'취임 100일' 이재용 회장, 키워드는 '글로벌·수평·동행'

기사등록 2023/02/03 10:32:55

중동·아시아·유럽 '폭풍 해외 행보'

워킹맘·MZ직원 등 직접 소통 확대

실적 부진·M&A·사법리스크 등 과제도

[바라카=뉴시스] 전신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아랍에미리트 부총리가 16일(현지시간)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현장에서 열린 3호기 가동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01.16.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지난해 10월27일 회장직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별도의 취임식 없이 조용히 취임한 이 회장은 100일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폭풍 행보를 보이며 존재감을 증명했다.

◆글로벌 네트워크 빛났다…100일 중 20여일은 해외출장
이 회장은 취임 후 첫 출장지로 중동 아랍에미리트(UAE)를 다녀온 데 이어 동남아시아, 유럽 등을 잇달아 찾으며 해외 경영에 힘을 쏟았다. 취임 기간 100일 중 2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을 정도다.

회장 취임 후 해외 사업장 첫 방문은 지난해 12월 UAE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을 찾으며 중동 국가들과 교류 확대에 나섰다. 원전 방문에 앞서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전자 중동 지역 법인장들을 만나 현지 사업을 보고 받은 후 중장기 성장 전략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이어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베트남 삼성 R&D센터는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에 세운 최초의 대규모 종합 연구소다. 이 회장은 약 9일간 베트남뿐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거점을 둘러보는 장기 출장을 소화했다.

신년에도 이 회장의 해외 행보는 계속됐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UAE 경제사절단에 동행한데 이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도 참가했다. UAE에서는 '만수르'로 알려진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과 함께 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돼 눈길을 끌었다.

스위스에서도 이 회장의 글로벌 인맥은 빛을 발했다. 그는 윤 대통령과 함께 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오찬에 인텔, 퀄컴 등 주요 글로벌 기업 CEO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힘을 썼으며, 윤 대통령에게 이들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을 찾은 글로벌 주요 인사들의 '면담 1순위'도 이 회장이었다.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UAE 왕세자와의 회동에 이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피터 베닝크 ASML CEO, 올리버 집세 BMW CEO 등과도 만남을 가졌다.

[서울=뉴시스]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현지시간) 파나마 삼성전자 파나마법인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2022.09.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폭풍 현장 경영으로 소통 강화…'수평적 조직문화'
국내 사업장을 찾아 MZ직원, 워킹맘 등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등 소통 행보도 계속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일 삼성화재 대전 연수원을 찾아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장 목소리를 청취했다. 그는 회장 취임 후 삼성 반도체 사업장, 삼성SDS, 삼성생명 등을 잇달아 찾아 애로사항을 듣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직원 사기 진작에도 충실했다. 그는 설 명절을 맞아 새해 첫 주 출산한 여성 임직원 64명에게 최신형 공기청정기를, 다문화 가정을 이룬 외국인 직원 180명에게는 에버랜드 연간 이용권 및 기프트카드를 선물했다. 지난해 추석에도 이 회장은 다자녀 가정과 장기 해외 출장 직원 가족에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삼성전자의 최신 모바일 기기와 굴비 세트를 각각 선물한 바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에도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그동안 직원 간에만 적용했던 '수평 호칭'의 범위를 경영진과 임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경영진을 포함한 임직원은 앞으로 영어 이름이나 영문명의 이니셜(앞글자), 한글 이름에 '님'을 붙이는 등 상호 수평적 호칭만 사용해야 한다. 경영진이 참석하는 타운홀 미팅이나 간담회, 임원회의 등 공식 행사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이 회장 역시 '이재용 회장님'이 아닌 영어이름 'Jay'나 영문 이니셜 'JY', 또는 '재용님'으로 불러야 한다. 한종희 부회장 역시 지난해 4월 타운홀 미팅에서 "부회장님 말고 JH(영문 이니셜)로 불러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0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삼성SDS 잠실캠퍼스를 방문해 워킹맘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삼성SDS 제공) 2022.08.3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첫 행보로 지역 협력회사 찾아…'미래 동행' 강조
이 회장은 취임 후 첫 공식 현장 행보로 광주에 위치한 협력회사를 선택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상생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와 28년간 함께 한 협력회사 '디케이' 생산 현장을 직접 둘러본 뒤 "협력회사가 잘 돼야 우리 회사도 잘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삼성전자 창립 50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도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며 '사회와의 동행'을 언급한 바 있다.

이 회장의 '동행' 철학은 삼성의 경영에 잘 녹아있다. 삼성전자는 ▲청년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해 취업 기회 확대(SSAFY)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을 외부로 확대해 청년 창업 지원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전환 지원 등의 CSR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2일에는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10번째 '삼성희망디딤돌' 전남센터를 개소하기도 했다. 삼성은 올 11월 청주시에 충북센터를 열어 전국에 총 11개의 '삼성희망디딤돌' 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삼성희망디딤돌'은 자립준비 청년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거 공간과 교육 등을 제공하는 청소년 교육 CSR 프로그램이다. 2016년 부산센터로 시작, 전국 센터에 입주하는 청년을 포함해 자립준비, 자립체험 등 지원을 받은 청소년은 지난해까지 누적 1만6760명에 달한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부당합병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2023.02.03. suncho21@newsis.com

◆반도체 부진·M&A·재판 등 과제도 산적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삼성전자의 실적이 악화되는 등 리더십을 발휘해 개선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97% 급감하며 겨우 적자를 면했다. 가전은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으며, 스마트폰 판매 역시 부진하다. 

대형 M&A 역시 지난 2016년 미국 전장·오디오 전문업체 하만을 인수한 후 멈춰있는 상태다. 반도체, 가전, 모바일, 로봇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차기 M&A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글로벌 경제가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한 만큼 가시적인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사법리스크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 회장은 현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자신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일모직 주가를 의도적으로 높이고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는 부당 행위를 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돼 2년 넘게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매주 목요일 열리는 재판에 출석하고 있으며 3주 간격으로 금요일에 열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판에도 출석한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르면 올 하반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 1심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삼성 측은 합리적 경영 판단의 일환이었고 합병 후 경영 실적도 나아졌다며 무죄를 주장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회장이 모든 혐의에서 자유로울 순 없을 것으로 본다.

노동조합 문제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 전자계열사 5곳에서 만들어진 9개 노동조합은 2일 기자회견을 갖고 연대 출범을 선언했다. 노조 연대는 "이재용 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사과했지만 여전히 사측은 일방적인 교섭 불참을 선언하는 등 불통을 이어가고 있다"며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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