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계 가장 논쟁적인 작가...리움미술관서 韓 첫 개인전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
바나나 '코미디언'·히틀러 '그' 등 조각 설치 벽화 38점 전시
관람은 무료...2주전부터 온라인 예약해야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럴 수가! 교황이 거대한 돌(운석)에 맞아 쓰러졌다. 그가 안간힘을 쓰고 의지하고 있는 건 가느다란 십자가 지팡이다.
붉은 카펫 바닥에 쓰러진 교황은 요한 바오르 2세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딱딱하게 굳어 있는 교황은 인조 조각이지만(종교인이라면 더욱더)감정을 요동치게 한다.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까? 짓궂은 농담에 불과한 것일까?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다. 종교적 지도자이자 바티칸 시국의 원수인 교황에 파격적인 설정을 적용한 모습처럼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권위를 조롱하는 작품들로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바나나' 작품으로 떠들썩했던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떠올려 보자. 그는 전시 부스현장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였고 이 작품은 12만 달러에 팔려 화제가 됐다. 그러나 전시 도중 한 작가가 벽에 붙어있는 바나나를 떼어 먹어버리면서 사건이 극대화됐다. 갤러리측이 항의하자 바나나를 먹어 치운 작가는 이것도 퍼포먼스라며 항변했고, 웃기는 작품이라는 소문이 나자 부스에 인파가 몰리면서 전시 중단 사태까지 맞았다. 작품을 내리기까지 거듭해서 논란을 일으킨 이 바나나의 제목은 '코미디언'이어서 현대미술의 아이러니함을 드러냈다.
당시 외신을 타고 세계적인 이슈를 만든 그 작품은 '바나나가 작품이 될 수 있냐, 아니냐', 고작 바나나를 벽에 붙였는데 '12만 달러에 팔리는게 맞냐 아니냐'로 설왕설래하며 미술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처럼 카텔란의 작품은 모순을 드러내며 질문하게 한다.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어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받는다. 자신을 '미술계의 침입자’로 규정했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을 벗어난 배경이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다 미술계에 몸담게 됐다.
작품이 나올때마다 첨예한 토론을 유발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의 역할은 거부한다.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고 했다. 스스로를 희화화지만 동시에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삶의 폐부를 찌르며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하는 현실 비평가로서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작가로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리움서 첫 대규모 한국 개인전
유머와 풍자로 뭉친 도발적인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신통방통함을 선사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 이태원 리움미술관은 새해 첫 전시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를 31일부터 펼친다.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의 개인전으로 조각, 설치, 벽화 등 주요 작품 총 38점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돋보이는 초기작 뿐만 아니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 온 바나나 작품인 '코미디언'(2019) 등 최근 화제작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동물'(말)을 뜻밖의 장소에 등장시켜 상상력을 자극하는 '유령'(2021), '비디비도비디부'(1996), 극사실적인 조각인 교황이 쓰러진 '아홉 번째 시간'(1999)을 비롯하여 자화상에 해당하는 '찰리'(2003) 등을 포함한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뒤에서 보면 어린아이 같은데 앞에서 보면 딱 떠오르는 얼굴로 카텔란을 또다시 논쟁적 작가로 부상하게 한 '그'(2001)도 전시됐다.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 꿇은 히틀러의 얼굴을 한 작품으로,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내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유발하게 한다.
카텔란은 작품은 개인적 서사에 기반한 강력한 감정을 담아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게 특징이다. 미술관의 바닥을 뚫고 엉뚱한 곳으로 나와버린 듯한 카텔란의 얼굴을 담은 '무제'(2001)는 미술계에서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외부인과 같은 카텔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는 빨간 카펫에 시신을 연상하게 하는 아홉 개의 대리석 조각 작품인 '모두'(2007)와 침상에 죽은 듯 나란히 누워 있는 두 명의 카텔란이 등장하는 '우리'(2010)도 공개해 죽음에 대한 복합적인 심상을 이끌어낸다. 이 작품들은 최근 우리에게 일어난 참사의 기억을 소환하고 추모하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하고도 심각한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 온 작가"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도발적인 익살꾼인 카텔란의 채플린적 희극 장치가 적재적소에 작동되는 작품들을 마주하며 공감, 열띤 토론 그리고 연대가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 기간 동안 카텔란의 작업 세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프란체스코 보나미의 아티스트 토크와 전시 기획 의도와 주요 대표작을 소개하는 김성원(리움미술관 부관장)의 큐레이터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관람은 무료지만 2주 전부터 온라인 예약해야 한다. 전시는 7월16일까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누구?
마우리치오 카텔란(b.1960·이탈리아 파도바)은 1980년대 후반부터 동시대 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 미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학적이고 도발적인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어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 받는다.
피렐리 행거비코카, 밀라노(2021), UCCA 현대미술관, 상해(2021), 블레넘 궁전, 우드스톡(2019), 모네 드 파리, 파리(2016),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2016/2011), 바이엘러 미술관, 리헨/바젤(2013), 팔라초 레알레, 밀라노(2010), 테이트 모던, 런던(2007) 등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또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2017/2001), 베니스 비엔날레(2011/2009/2003/2001/1999/1997/1993), 광주비엔날레(2010/1995), 시드니 비엔날레(2008), 휘트니 비엔날레(2004) 등 유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피에르 파올로 페라리와 '토일렛 페이퍼(TOILETPAPER)'를 공동 창간하고, '찰리(Charlie)', '퍼머넌트 푸드(Permanent Food)'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출판 활동을 펼쳤다.
1995년 '제 6회 카리브해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알리 수보트닉과 함께 2002년 뉴욕에 ‘더 롱 갤러리(The Wrong Gallery)’를 설립했다. 2018년 중국 유즈 미술관에서 'The Artist is Present'를 기획하는 등 미술 현장과 제도를 비평적으로 재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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