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인데 왜…고정금리 정책상품 인기 '시들'

기사등록 2023/01/23 07:00:00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3일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각종 매물이 쌓여가고 있다. 은행 대출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모두 거래량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2023.01.03.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대출금리의 급격한 상승세가 멈춘 것이 아니냔 전망이 확산되면서 정부가 내놓은 고정금리 정책상품들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고정형(혼합형) 금리는 연 4.36~6.30%, 변동형 금리는 연 4.60~7.15% 수준이다. 연초 8%대를 돌파했던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 상단이 대부분 6%대로 내려오고, 대부분의 차주들이 적용받는 금리 하단이 4~5%대까지 하락했다.

이는 "대출금리 인상을 자제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 금리 안정화 추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가 하향 조정되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조만간 막을 내릴 것이란 관측까지 나오면서 추후 대출금리가 더욱 내려갈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8일 진행된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엔 5% 넘는 물가상승률이 있었고 또 가속화됐기 때문에 경기나 부동산 시장이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리 올리는 게 우선순위였다"며 "지금은 이미 금리가 높은 수준에 있으니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를 봐야 한다"고 말해 시장에선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며 국고채 3년물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섰다. 19일 국채시장에서 벤치마크(기준)인 국채 3년물 금리는 연 3.248%에 거래를 마쳤다.

이에 대출 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처럼 금리가 안정화되는 추세 속에서 고정금리 상품을 택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굳이 현 시점에서 정부의 고정금리 정책상품으로 갈아탈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금융소비자들이 현재 금리 수준보다 낮은 고정금리를 택하거나, 기존 대출을 고정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현재 다양한 정책상품을 통해 적극 유도하고 있다.

금융위가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이 대표적이다.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준고정금리(혼합형) 주담대를 최저 연 3.7% 금리의 장기·고정금리·분할상환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상품이다. 향후 금리가 오르더라도 내야하는 원리금이 동일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가입 실적이 매우 저조했다. 금융위는 지난해 9월15일부터 12월 말까지 안심전환대출 신청을 받았지만, 신청금액이 9조4787억원(7만4931건)으로 집계돼 공급한도(25조원)의 약 38%를 채우는데 그쳤다. 일각에서는 기존에 비해 높아진 금리 수준과 여전히 깐깐한 신청요건, 여기에 새롭게 등장할 특례보금자리론에 대한 기대감 등이 겹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금리상한형 주담대' 상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금리상한형 주담대는 금융당국이 본격적인 금리 상승기에 대비해 대출자들의 상환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2021년 7월 시중은행을 통해 재출시한 상품이다. 시장금리가 아무리 올라도 금리갱신 시점에 가입자에게 새로 적용되는 금리를 직전 금리 대비 연간 최대 0.75%포인트 또는 5년간 2%포인트 이내로 제한한 것이 특징이다.

이 상품은 출시 초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상품 내용을 개편하고 금리가 본격적으로 급등한 지난해 7월 이후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실제 지난 2021년 7월 상품이 출시된 지 1년 후인 지난해 7월14일까지만 해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금리상한형 주담대 상품 가입 실적은 115건(217억2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15일부터 같은 해 11월10일까지 총 1162건(2525억6300만원)으로 약 4개월간 가입자가 10배 늘었다. 한은의 금리인상 릴레이가 본격화되며 시중금리가 급등하고,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상품 혜택을 확대한 영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제자리걸음 중이다. 5대 은행의 지난해 12월말 기준 금리상한형 주담대 취급 실적은 약 1790건(4020억원)으로, 증가세가 주춤해졌다. 특히 지난해 11월 494건(1137억원)에 달했던 가입 실적은 12월엔 314건(730억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 1월의 경우 아직 집계가 완료되진 않았으나, 일부 은행들에선 단 한 건의 취급건수가 없는 곳도 있었다.

오는 30일 출시될 특례보금자리론을 둘러싸고도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 수준이 안심전환대출과 크게 다르지 않아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택가격 6억원 이하·부부합산소득 1억원 이하인 차주를 대상으로 한 특례보금자리론 '우대형'은 4.65~4.95%, 일반형은 4.75~5.05%가 적용된다

현재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 보다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 하단이 오히려 더 높은 것이다. 시중은행의 고정금리 대출 금리와 비교하면 우대형과 일반형 특례보금자리론 모두 금리 하단이 시중은행보다 더 높다.

최대 0.9%포인트까지 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를 모두 적용받을 경우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가 연 3.75~4.05%로 내려가지만,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사실상 적용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다만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 측은 특례보금자리론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단 입장이다.

주금공 관계자는 "앞으로 시중금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특례보금자리론은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고정금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차주들이 안정적인 지출 플랜을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무엇보다 소득제한이 없고, 중도상환수수료 면제로 추후 다른 대출로 갈아타기도 용이해 올해 주택구입 계획이 있는 실수요자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융권에서는 추후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가 하향 조정될 경우, 수요를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매월 시장금리, 재원상황 등 제반상황을 감안해 특례보금자리론의 대출 기본금리를 조정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출시는 예정대로 하되, 추후 시장금리가 추가적으로 하락할 경우 특례보금자리론의 금리 수준도 다소 낮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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