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소나루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
지난해 10월 대선 패배 뒤부터
군부대 주변에 진 치고 쿠데타 요구
브라질리아 치안경찰도 친 보우소나루
전 세계 극우 부상속 미 의회폭동 닮은 꼴
미·유럽·중남미 국가들 일제히 시위대 비난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브라질에서 시위대가 수도 브라질리아의 대통령 집무실, 의회, 대법원을 점거함으로써 남미 최대국가 브라질에서 1964년 군사 쿠데타 이후 최대의 민주주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위대 점거는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승리한 루이스 이나시외 룰라 다 실바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주일 만에 발생했다. 2021년 1월6일 미 의회 폭동과 함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 확산하는 극우 선동적 우파들의 선거 패배 거부 움직임이 법치를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의회를 점거한 하이르 보우소나루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은 “개입”이라고 쓴 깃발을 의회 건물 앞에 내걸었다. 군대가 나서서 룰라 신임 대통령을 몰아내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다.
시위대들은 경찰을 향해 “이제 시작이다. 신이여 경찰의 우리 애국자들을 막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외쳤다.
시위대들은 대통령 집무실인 플라날토궁의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으며 의회 옥상에서는 불꽃을 발사하고 있다. 시위대들은 대법원도 적대시해 공격했다.
수천 명의 시위대가 수도의 대형 광장에 모여 브라질 국기를 흔들며 “신, 조국, 가족, 자유”를 외쳤다.
소셜 미디어에 오른 동영상에는 시위대 수십 명이 프라사 도스 트레스 포데레스(三權광장)에서 행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위대가 올린 것으로 보이는 이 동영상에서 시위대들은 한 여성이 기마경찰을 공격하자 한 남성이 말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오후 폭음과 매캐한 최루가스가 광장에 퍼졌고 보안군이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이날 저녁 룰라 대통령은 화가 난 모습으로 정부 시설 점거 시위대를 “파시스트”로 비난했다.
그는 “전에 없던 일이다. 공공건물에 진입한 모든 사람들을 찾아내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내내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머물고 있는 보우소나루 전임 대통령은 시위에 대해 침묵했다.
이번 시위는 브전 세계적인 분열적 정치 상황 속에서 라질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룰라 대통령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날 오후 2시30분 시작된 시위대의 공공건물 점거에 대해 플라비오 디노 법무장관은 보안군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힘으로 압박하는 터무니없는 행위를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연방 정부가 병력을 증원할 것이다. 우리 명령을 받는 군대가 대응하고 있다. 나는 지금 법무부 청사에 있다”고 트윗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중남미 각국이 시위대를 비난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은 브라질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모든 시도를 비난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으며 브라질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지지는 견고하다. 브라질 민주주의는 폭력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보우소나루와 트럼프 전 미 대통령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브라질 폭도들은 몇 달 전부터 미국의 1월6일 폭동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해왔다. 보우소나루는 선거 전부터 근거 없이 전자투표기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패배한 뒤 보우소나루는 지지자들의 불만을 부채질 했고 시위대들이 군부대 주변에 진을 치도록 했으며 지난달 퇴임 연설에서 선거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었다.
룰라 대통령은 보우소나루를 향해 “이 살인마가 이번 일을 일으켰다. 그가 세 기관 점거를 촉발했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이가라페연구소 로베르트 무가 설립자는 “폭도 폭력의 폭발이 미리 예고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브라질 극우 폭도들이 의회와 대법원, 대통령궁 점거가 1월6일 미 의회폭동을 닮은 점은 우연이 아니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뜻으로 미 극우세력을 지칭)들과 마찬가지로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몇 년 동안 허위 정보를 유포해왔다. 이는 미 극우세력들이 벌인 주장을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저명한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1950년대에 미래 구상을 담아 건설한 삼권광장(三權광장)은 브라질의 상징물이다. 이곳을 시위대가 점거한 것이다.
룰라 대통령은 암묵적으로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경찰과 맞서고 있다. 대선 투표 과정에서 경찰이 룰라 후보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 검문소를 설치해 유권자 투표를 방해한 일도 있다. 시위대가 브라질 정부 기관을 공격하는데도 태연하게 코코넛 음료를 사고 있는 경찰관 모습이 현지 언론 에스타다오(Estadao)에 실리기도 했다.
룰라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연방 정부를 지켜야할 연방 경찰이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라질리아의 보안 책임자는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안데르손 토레스다. 그는 시위대를 비난하는 트윗을 했으나 주지사에 의해 파면됐다. 브라질 언론들은 토레스가 보우소나루와 함께 플로리다에 체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천 명의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이 브라질 전국의 군부대 주변에 진을 치고 보우소나루를 복귀시키도록 요구해왔다. 이들이 왜 연방정부 건물 점거에 나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디노 법무장관이 지난 6일 이들 시위대를 해산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8일까지 구체적 행동은 없었다.
브라질 정부는 시위대의 점거 가능성에 대비한 흔적이 없다. 정부 건물 주변 보안이 강화된 기미도 없었다. 플라날토궁을 지키는 군 경찰들이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막으려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후 5시 경 보안군과 폭동 진압 경찰이 대법원을 점령했으나 시위대들이 여전히 주차장에 머물고 있다고 대법원 대변인이 밝혔다.
오후 6시20분 현재 경찰은 플라날토궁을 대부분 되찾았다.
의회와 대법원은 휴회중이어서 의원과 판사는 없었다. 시위가 발생한 직후 룰라 대통령이 사웅파울루주에서 브라질지아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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