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검찰에 사건 넘긴 공수처…흔들리는 역할론

기사등록 2023/01/08 10:00:00

尹대통령·현직검사 사건 등도 검찰로 넘겨

현직 국회의원 '노웅래 사건'도 검찰이 수사

"급하게 설치해 입법 공백"…개정 논의 공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뉴시스 DB.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고위공수자범죄수사처가 '김학의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 사건을 검찰로 다시 이첩했다. 공수처가 검찰에 사건을 넘기는 일이 반복되면서 '검찰·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라는 역할론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 4일 해당 사건을 대검찰청으로 이첩했다. 공수처는 최초 신고자인 장준희 부산지검 부부장검사가 참고인 조사에 불응하고, 법원과 검찰에 요청한 증인신문녹취서도 받지 못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공수처는 2021년 이 사건을 검찰에서 이첩 받았지만 수사인력 부족을 이유로 검찰로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가 끝나면 최종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결정하는 '조건부 이첩'을 요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찰은 사건관계자 중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만 기소하고 나머지 수사를 공수처로 넘겼는데, 공수처가 이번에 재이첩을 결정한 것이다.

◆공수처, 尹대통령·현직검사 사건 검찰로 넘겨

공수처법에 따라 공수처는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고위공직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

공수처는 지난해에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조선일보 사주 일가 수사방해 의혹'을 비롯해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허위 면담보고서 작성 및 유출 의혹', 현직 검사의 '성범죄 피해자 신상노출' 사건 등을 검찰로 넘겼다.

반대로 공수처가 직접 수사하겠다며 이첩해 달라고 요청한 사례는 2건에 불과하다. 공수처법 24조는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이첩요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첩요청권이 실제 발동된 사례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부당채용 의혹 사건뿐이다. 나머지 1건은 김학의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 사건인데 검찰이 불응했다.

공수처 출범 첫해인 2021년 공수처가 대검에 이첩한 사건은 1390건, 대검이 공수처에 이첩·이송한 사건은 5건이다. 지난해 집계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현직 국회의원 '노웅래 사건'도 검찰이 수사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1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본인의 체포동의안에 대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2022.12.28. scchoo@newsis.com
현직 국회의원인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은 현재 공수처가 아닌 검찰이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사건을 넘겨받는 이첩요청권 행사에 신중한 입장이다. 구체적인 사건 파악이 되지 않은 데다 공수처에 국회의원 기소권이 없어 '출구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노 의원 사건을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서 수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도 정치적 부담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요청권에 대한 우려가 많아 굉장히 절제하면서 사용하려고 한다. 중요한 건 다른 수사기관이 인지한 사건을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한 조항인데, 여기에서 검찰과 저희가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현행법상 검·경은 고위공직자범죄를 인지한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 검사의 범죄는 '혐의를 발견한 경우' 공수처에 이첩하도록 했다. 공수처는 고소·고발이 접수된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고 보지만, 검찰은 고소·고발은 인지가 아니라는 입장이라 갈등을 빚고 있다. 

◆"공수처 급하게 설치해 입법 공백"…개편 논의는 공전
[서울=뉴시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4조
법조계 인사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를 급하게 설치하다 보니 입법 공백이 크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과 기소권 범위가 일치하지 않아 제대로 된 수사가 어렵고 수사관 정원이 적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이첩요청권이 명시된 공수처법 24조 폐지하겠다고 공약해 공수처의 운신 폭이 더 좁아졌단 해석도 내놨다.

내부에서도 공수처가 '초미니 기관'인 데다 이첩요청권이 유명무실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예상균 공수처 공소부장은 대한변호사협회 학술지 '인권과 정의' 12월호에서 공수처를 '초미니 수사기관'이라고 규정했다. 공수처의 현원은 검사 21명·수사관 39명에 불과하다.

예 부장검사는 공수처가 현실적으로 수사 단서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민원인의 고소·고발·진정 ▲다른 수사기관의 이첩인데, 공수처장의 이첩요청권 행사는 '조건부 이첩' 논란 이후 행사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검·경에서 수사 인력을 파견받는 특검 형태로 공수처를 운영하거나 이첩요청권을 행사하지 않고 합동수사기구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회는 수사권 조정 등 형사사법제도 개편을 위해 형사사법체계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여야 대립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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