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치한약수' 전문직 목표"...수능으로 유턴하는 직장인들

기사등록 2022/12/18 00:02:00 최종수정 2022/12/19 12:05:46

"취업해도 안전장치 없어…전문직 원해"

출근전 단어 외우고 주말에도 인강들어

약대 학부 선발 부활, 직장인 유입 요인

26세 이상 의·약대 입학…4년 새 4.5배↑

[광주=뉴시스] 김혜인 기자 =9일 오전 광주 남구 동아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 배부를 기다리고 있다. 2022.12.09. hyein0342@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하 기자 = #1. 2년간의 수험생활을 거쳐 원하던 직장에 입사한 안모(27)씨는 최근 퇴근 후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내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각종 스펙과 자격증을 취득한 뒤 취업에도 성공했지만 약사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주말에도 인터넷 강의를 듣고 부족한 공부를 하는 그는 "개업을 하면 정년도 충분히 보장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기에 나이는 늦었지만 더 이득"이라고 했다.

#2. 직장인 이모(29)씨는 매일 아침 출근 전 2시간 동안 영어 단어를 외운다. 내년 수능 영어 과목 때문이다. 퇴근 뒤에는 물론이고 점심시간에도 수능 연계 영어 교재를 푼다. 의대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다. 3년 정도 도전해볼 생각이라는 이씨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오긴 했지만, 들어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막상 하는 일이 달랐다"며 "아무래도 전문직 자격증을 따면 병원에 들어가거나 개업을 할 수 있으니 훨씬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고 했다.

최근 20대 중반부터 30대까지 수능을 다시 준비하는 '직장인 수능러'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이른바 '의치한약수'로 불리는 의대·치의대·한의대·약대·수의대를 목표로 공부한다. 이들이 수능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전문직 선호현상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취업을 해도 전문직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로 조직생활에서 느끼는 한계를 꼽았다. 이씨는 "회사에서 근무하다보니 미래가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데, 인생을 길게 보면 지금이라도 진학해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딴다면 정년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또 의료 분야의 직업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평생 자격이 유지되는 데다, 초고령사회에 임박하며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안정적이고 수입도 높다는 인식이 크다.

의료 분야에 진출하고 싶어 수능을 다시 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약학대학 학부 선발의 부활도 직장인 수능 응시생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2+4 전문대학원 체제로 운영되던 약학대학들이 모두 6년제 학부 모집으로 전환되며 '직장인 수능러'들의 유입 요인이 됐다.
 
종로학원이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통계 서비스를 분석한 결과 의약 계열의 26세 이상 성인 입학자는 2017년 130명에서 지난해 582명으로 늘었다. 5년 새 4배 이상이 된 것이다. 같은 기간 의약 계열 전체 합격자 수는 2만4000여 명에서 2만5700여 명으로 소폭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26세 이상 '늦깎이 수험생'만 부쩍 많아진 셈이다.

늦깎이 수험생 증가는 N수생 비율의 상승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 수능 응시생 중 당해년도 입학생이 아닌 응시생 수는 10만3620명이었다. 2020년 10만1994명, 2019년 9만293명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종로학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재수생 비율(검정고시 포함)은 31.1%로 2005년 이후 최다이다.

김순영 종로학원 관계자는 "보통 직장인 중 수능 준비를 하려고 오는 학생들은 최소 약대 진학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유성룡 유니타스 소장은 "취업을 해도 불안한데 평생할 수 있는 직장이 의료계열이니 안전장치를 찾기 위해 장수생들이 늘어난 것 같다"면서 "의사 등의 직업은 자격증이 있으니 계속할 수 있는 안정된 직업이라 인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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