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7일 째인 트러스, '낙수효과' 기대의 무작정 감세·탈규제 조치로 역풍 맞아
이어 트러스 총리는 제러미 헌트 의원을 새 재무장관으로 기용했다. 헌트 의원은 문화, 외무, 보건 장관을 역임했으며 2019년 테레사 메이 총리 사임 후 보리스 존슨 의원과 당대표 및 후임 총리경선 최종후보 2인으로 맞서다 패했다.
14일 워싱턴 국제회의 중 급거 귀국한 콰르텡 장관은 트윗에 총리가 "물러났으면 좋겠다"고 말한 사실을 밝혀 자진 사임이 아닌 경질임을 분명히했다.
트러스 총리에 대한 소속 보수당 내 퇴진 촉구 움직임이 감지되는 가운데 트러스 총리는 이날 오후 문제의 '감세 및 탈규제'의 미니예산안에 관한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먼저 재무장관을 경질한 것이다.
파운드화 기치와 영국정부 국채 가격 폭락 사태를 가져온 미니 예산안 책임을 콰르텡 장관에게 돌리려는 모습으로 풀이될 수 있다.
트러스 총리는 작은정부 지향의 자유주의자에다 시장 무한신뢰의 시장주의자로 총리 경선 때부터 여유있는 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대폭 감세와 탈규제로 만년 1%의 경제성장률을 2.5%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해왔다.
9월6일 취임한 후 여왕서거 및 장례가 마무리된 나흘 뒤인 23일 트러스 총리는 콰르텡 재무장관을 대동하고 '미니 예산안'을 발표했다.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인 45%를 폐지하고 최저 세율을 19%로 내리며 같은 보수당의 전임 보리스 총리정부가 발표했던 법인세 19%의 25% 인상안을 취소시켰다. 은행 펀드매너저의 보너스 제한을 없앴다.
이 감세 조치로 연 450억 파운드의 세수가 줄어들게 됐는데 앞서 트러스 총리는 취임 직후 가계의 에너지비 지불부담이 1년에 3배로 오르는 것을 2배로 줄이는 선심 정책을 내놓았다.
이 에너지비 동결을 위해서는 연 700억 파운드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감세로 인한 450억 파운드(73조원) 세수 감소와 700억 파운드(112조원) 정부지원은 국고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 신규 국채발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시장은 감세에 상응하는 정부지출 삭감이나 다른 증세안이 없는 트러스 총리의 경제안에 극히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26일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1달러 당 1.10파운드 수준에서 1.03파운드 수준까지 대폭락했다. 이어 성장은커녕 더 나빠질 것 같은 영국 정부에 지금보다 비싼 이자를 받고서야 돈을 빌려주겠다는 투자 심리가 팽배하면서 국채 가격 역시 폭락했다.
영국은행(BoE)이 국채가격 폭락으로 연기금 상황이 위험해지자 무제한 국채매입에 나섰고 트러스 총리는 45% 세율 폐지를 취소했다. 그러면서 미니 예산안이 아닌 정식 예산안을 통해 감세와 탈규제에도 정부가 재원을 확보하고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30일까지 제시할 것을 약속했다.
또 법인세를 이전 정부 방침대로 25% 인상할 의사를 나타냈다. 14일 오후에 트러스 총리는 이 조치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돼 파운드화와 국채 가격이 올랐다.
그러나 트러스 총리는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어 어떤 확실한 희생양이 필요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2025년1월 총선을 조기에 당장 실시하자고 나서고 있으며 여론 지지도는 노동당이 최소 20%포인트 앞서 있다.
같은 토리당 내부에서는 총리 경선 최종 2인으로 당원 우편투표에서 트러스와 맞붙었던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 중심의 새 정부를 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중이다.
존슨 총리의 외무장관이었던 트러스 의원(46)은 보수당 하원의원 359명의 5차례 투표에서는 마지막 5차에서야 간신히 수낙 다음의 2위를 차지했다. 5차 투표 전까지 2위였던 페리 모돈트 의원을 수낙 의원과 함께 새 내각의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도 들린다.
한편 관저도 총리의 다우닝가 10번지 바로 옆 11번지로 정권 2인자인 영국 재무장관 직은 7월5일 수낙 장관이 존슨 총리 퇴진을 요구하며 사임한 후 이날 전격 기용된 제러미 헌트 의원까지 4개월이 안 되는 새에 4명이 돌려가며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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