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완충구역내 사격…정부 "9·19합의 파기 여부, 北 손에"

기사등록 2022/10/14 15:38:22 최종수정 2022/10/14 15:48:46

합참 "北 군사합의 최소 4차례 위반"

이종섭 "9·19 군사합의 효용성 검토"

합의 파기 시 北비핵화 명분 사라져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10.14. photo1006@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지은 기자 = 북한이 잇단 미사일 도발에 이어 완충수역으로 포병사격을 감행하고 비행금지구역을 위협하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 남북 간 체결한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북한의 향후 움직임을 살피면서 9·19 군사합의 효용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9·19 군사합의를 파기할 가능성을 열어 둔 셈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14일 오전 1시 20분께부터 5분간 황해도 마장동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130여 발, 2시 57분께부터 10분간 강원도 구읍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40여 발의 포병 사격을 했다.

탄착 지점은 9·19 합의에 따른 북방한계선(NLL) 북방 동·서해 해상완충구역 내였다. 우리 영해에 관측된 낙탄은 없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탄착 지점이 9·19 합의에 따른 NLL 북방 동·서해 해상완충구역 내부로 합참은 합의 위반으로 판단하고 있다. 군사합의서에는 이 완충구역 내에서 해상사격이나 훈련 등을 금지하고 있다.

합참은 즉각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규정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대북 경고문을 발송했다.

북한은 전날 밤에도 군사합의에서 설정한 비행금지구역 및 군사분계선(MDL) 인근까지 군용기를 내려보내, 우리 군이 F-35 전투기를 출격시키는 등 대응에 나섰다. 지난 8일 전투기 150대를 동시 출격시켜 공중 무력 시위에 나선 지 5일 만이다.

북한 군용기는 전술조치선(MDL 북방 20~50㎞에 설정) 이남 서부 내륙지역에서 비행금지구역 북방 5㎞(MDL 북방 25㎞) 인근까지 접근했다가 북상했다. 동부 내륙지역에서는 비행금지구역 북방 7㎞(MDL 북방 47㎞)까지, 서해지역에서는 북방한계선(NLL) 북쪽 12㎞까지 각각 접근했다.

합참이 공식적으로 9·19 합의 위반이라고 밝힌 것은 이번이 4번째다. 앞선 두 건은 2019년 11월 창린도 방어부대의 해안포 사격과 2020년 5월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총격 사건이다. 우리 군은 이번 포병 사격이 동해와 서해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 개별 위반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5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9월 19일 발표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다.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행위를 종식해 전쟁 위험을 제거한다는 내용으로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안에서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이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이 모든 적대적인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6.25 종전 이후 군사적으로 가장 진전된 합의로 평가됐다.

하지만 북한이 9·19 합의의 정신과 취지를 존중하지 않는 군사행동 수위를 높이자 여권을 중심으로 강경론도 거세지고 있다.

정부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출근길에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9·19 군사합의 파기도 고려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한·미·일 3개국이 외교부·안보실 등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대응 방안을 차근차근 준비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9·19 남북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고 한발 더 나아갔다.

이 장관은 "북한은 합의사항을 준수하지 않는데 우리만 준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북한의 도발 강도를 봐가며 '9·19 군사합의'의 효용성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아주 특단의 사정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9.19 군사합의를 비롯한 남북 간 합의를 먼저 깨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도 "최악의 상황에선 모든 옵션을 검토할 필요는 있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합의 파기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할 명분과 무기를 잃는 것이어서 실익이 없고 향후 군사적 대치 상황이 한층 고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9.19 군사합의를 먼저 폐기한다면 앞으로 일어날 군사적 상황 악화의 모든 책임을 국제 사회에서 한국이 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군사 분야 합의서 파기 움직임에 대한 북한군 총참모부 언행에 눈여겨볼 대목"이라며 "접경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지 말라는 대남경고 메시지와 함께 합의서 완충지역 밖에서 비행무력시위 단행했다. 북한은 아직 먼저 군사분야 합의서 파기를 하지 않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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