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로 쌓여 있는 경구용 치료제
제 때 치료 못 받아 결국 중증으로 악화
의료진 교육 절실한데…제약사의 정보 제공 활동은 배제
[서울=뉴시스] 송연주 기자 = 코로나19 재유행 속도가 빨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고위험군의 중증화를 막을 수 있는 먹는 코로나19 치료제의 처방이 벽에 부딪히고 있다.
함께 복용하면 안 되는 약물이 많아 처방을 위해선 의사가 고려해야 할 게 많고 부작용 관리 등으로 처방에 부담을 느껴서다.
문제는 제 때 제대로 처방받지 못한 고위험군 환자가 결국 입원 및 악화되는 중증화다.
의료진의 부담을 덜어줄만한 올바른 정보와 교육 제공이 절실한 약이지만, 실상 이런 일에 가장 능숙한 제약회사는 긴급사용승인 약물에 대해 교육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제 대상이어서 두 손이 묶여 있는 상태다.
◆재고로 쌓여 있는 항바이러스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현재까지(22일 기준) 도입된 먹는 코로나19 치료제(항바이러스제) 106만2968명분 중 약 30만명분(팍스로비드, 라게브리오)이 사용돼 재고량은 76만5071명분이다.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작년 12월27일 국내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후 21일 기준 27만2546명분만이 사용되며 상당 부분 재고로 남아 있다.
항바이러스제는 만 60세 이상이거나 만 12세 이상 중 면역저하자 또는 기저질환을 가진 고위험군 환자가 코로나19 확진 초기 적극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이다.
그러나 일선 의료진, 특히 개원가에서 처방을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이 관찰돼왔다. 특히 우선적으로 처방해야 하는 약물인 팍스로비드가 그렇다. 이 약과 함께 쓸 수 없는 병용금기 약물이 28개에 달하고 처방 후 절차도 복잡해서다. 처방한 의사는 질병관리청에 치료제 투약 확인서를 보건의료위기대응시스템을 통해 제출해야 한다.
정기석 한림대의대 호흡기 내과 교수는 “개원가에서 처방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진료를 이비인후과와 소아청소년과에서 많이 맡았는데, 두 진료과 의료진이 병용금기 약물을 써본 경험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안 쓰던 약을 쓰려니 부담됐던 것이다”며 “또 초반에는 처방 후 48시간 이내 환자의 전화를 받아줘 수가를 높일 수 있는 등 매우 불편한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제 때 치료 못 받아 결국 중증으로 악화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를 제 때 먹지 못한 고위험군 환자가 결국 중중에 빠지는 경우도 목도되고 있다. 60세 이상 고연령층의 경우 전체 확진자의 20% 내외이지만 전체 사망자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고위험군이다. 면역저하자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중증화, 사망 위험에 취약하다.
백애린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중환자실 전담 전문의)는 지난 달 12일 대한의사협회의 ‘오미크론 대유행 이후 코로나19 미래와 대책 간담회’에서 “상급종합병원에 통원해 기저질환·처방약 정보가 다 나와 있는 고위험군 환자가 확진돼도 재택치료로 넘어가 투약 시기를 놓쳐 중환자가 돼 입원하는 실정이다”고 토로했다.
이어 “항바이러스제가 있음에도 위중증이 될 때까지 맞지도 않는 대증치료를 받은 환자를 보면 번-아웃까지 느낀다”며 “이들 환자 중에는 의사로부터 항바이러스제 관련 설명을 한 번도 못 들어본 경우도 있다. 환자가 물어봐도, 의사는 재고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거나 행정절차의 번거로움, 병용금기약물을 우려해 처방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고위험군 확진자에게 필요한 것은 해열진통제 처방이 아니라 조기 항바이러스 처방이다”며 “병용 금기 약물을 5일 정도 안 쓴다고 큰 일 일어나지 않는다. 의사는 전문가이기에 합리적이고 과감한 결정을 해 위중증 발생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코로나로 인한 증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경구 치료제 복용이 필요하지 않다고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위험군 환자는 증상이 경미하더라도 중증화 및 사망 예방을 위해 항바이러스제 투여가 필요하다.
◆의료진 교육 절실한데…제약사의 정보 제공 활동 배제
무엇보다 의료진에 대한 약물 교육과 정보 제공이 중요하지만 정부만이 전담하는 열악한 실정이다. 해당 약의 정보를 가장 많이 아는 개발사(화이자, MSD)도 별도의 정보 제공 활동을 할 수 없다. 긴급사용승인 약물에 대해선 제약회사가 의료진에 정보 제공 및 교육 활동을 할 수 없는 규제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의료진의 약물 정보 및 교육 부족이 항바이러스제 처방이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다”며 “의사들이 단기간 내 처방 정보를 충분히 익히기엔 어렵고 병원 간 편차도 있으므로 교육 기회의 제한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13일 재유행 대비 및 고위험군에 신속한 처방을 위해 호흡기환자진료센터 처방기관 외에도 종합병원, 병원급 호흡기 환자 진료센터에서 원내 처방이 가능하도록 확대했다. 94.2만명분(팍스로비드 80만·라게브리오 14.2만) 추가 구매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기석 교수는 “고위험군 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를 제 때 투약해야 입원, 병실, 사망을 모두 줄일 수 있다”며 “질병청에서 사용 범위를 넓히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신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의사의 자정 노력 및 모니터링·감시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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