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아시아 첫 개인전 서울 3곳서 동시 개최 8월25일까지
삼청동 초이앤초이갤러리·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모든 것들은 무너지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코로나19사태로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였지만, 세상은 또 돌고 돈다. "모든 존재는 그저 영원한 반복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러니 "우주의 종말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말라"고 필립 그뢰징어(50)는 그림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우주공간·몬스터 등 공상과학 영화 한 장면 같다. 강렬한 색감 만큼이나 이중적이다. 천진난만하면서도 디스토피아적인 행성들, 흰색의 괴물, 기이한 구조물들, 다채로운 꽃들, 거친 파도 속 홀로 남겨진 선원의 모습 등 '상상 세계'가 시각화됐다.
장난스럽고 알록달록한 헤도니즘(Hedonism·쾌락주의)를 풍기는 겉모습과 달리 알고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어둠과 우울함이 자리 잡고 있다.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나, 총체적인 불안감, 카오스적 혼돈과 낙관주의 유머가 뒤섞여 묘하게 감성적 자극을 선사한다.
독일 중진 작가 필립 그뢰징어(PHILIP GRÖZINGER)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서울의 전시장 3곳에서 동시에 열린다. 삼청동 초이앤초이갤러리(공동대표 최진희·최선희),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대표 김나리)와 아이프라운지 등에서 회화 작품과 색채 드로잉 각 40여 점씩 총 80여 점을 선보인다.
7일 서울에 내한해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그림은 이야기의 시발점으로 단초만 제공할 뿐, 작품의 스토리 완성은 보는 이에게 맡긴다"고 했다.
"기억의 파편들과 과거의 순간들을 내 그림 속에 배치하는 것! 이 과정이 정말 즐겁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나 머릿속이 가득할 때면 스케치를 시작합니다. 그림 하나로는 그 많은 것들을 다 담기에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죠. 그러면 도미노처럼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 어느 순간 한 시리즈가 탄생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그 이야기의 해석은 오로지 관객의 몫입니다.”
자유로운 해석과 흥미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은 빠른 속도감으로 즉흥적이고 순발력 넘치는 화법이 돋보인다. 오일, 아크릴, 파스텔, 스프레이 페인트 등 사용하는 재료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또한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낭만주의 등 특정한 미술 사조나 스타일에도 묶이지 않았다.
장난스런 그림처럼 개인전 제목도 'Why So Serious?(왜 그리 진지해?)'다. 무한함을 상징하는 롤로코스터 앞에 앉아 낚시하는 인간처럼 모든 존재는 영원히 반복되는 기다림의 순환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세상은 영원한 반복으로 이어질 뿐이다.
작가는 "질서의 존재 자체 또한 환상이었다"며 "우리는 이러한 모순들을 받아들이고 맞춰가며 생산적인 부조리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전한다. 8월25일까지.
◆화가 필립 그뢰징어는?
독일 구동독 브라운슈바이그 시 출생으로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1990~1998년 브라운슈바이그의 예술아카데미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1998년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州)의 장학금을 수여 받았으며, 2015~2017년까지 베를린 바이센제(Weissensee) 예술대학의 회화과 강사를 역임했다. 독일 밤베르크시립미술관은 물론, 베를린ㆍ뮌헨ㆍ함부르크ㆍ파리ㆍ코펜하겐 등에서 정기적으로 초대 개인전을 가졌다. 독일 라이프찌히현대미술관ㆍ바이덴시립미술관ㆍ압타이 리스본미술관 등의 주요 기획전에 참여했다. 2022년 미술계의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독일의 81인 회화작가’를 다룬 'Dissonace'책에 소개되어 베를린 베타니엔하우스 기념전에 초대됐다. 작품은 베를린시립미술관을 비롯해 여러 곳의 주요 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