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국민연금공단 수장 공석
논의기구 공적연금개혁위 구성 안돼
시민사회 "사적연금만 활성화" 지적
'개혁 흐지부지' 文정부 뒤따를 우려
이대로라면 임기 초 연금 개혁을 추진했다가 결국 흐지부지된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6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5대 부문 구조개혁' 중 하나로 연금 개혁을 발표했다. 내년 3월까지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실시하고,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관련 논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위원회를 통한 논의'를 공언했던 만큼 이날 발표에는 공적연금위 구성과 개혁 방안이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포함되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인지 총리 직속인지 위상도 불투명하다.
대신 공적연금 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사적연금을 더 활성화 한다. 연금저축 세액공제를 연간 4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퇴직연금은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 비전이 부재한 와중에 연금저축·퇴직연금 같은 사적연금 활성화 계획을 내놓으면서 정부가 개혁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민단체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은 "공적연금 개선안은 내년 하반기에 마련하되 기금운용 개선 방안 논의를 병행하는 반면, 사적연금 세액공제 납입 한도 상한은 당장 추진하고 있다"며 "사적연금 세액공제 상향은 결국 정부가 돈 많은 사람들에게 나랏돈 들여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공적연금)과 달리 사적연금은 종신형 연금이 발달하지 않았고, 수수료가 높아 보험료 납부액 대비 노후 소득보장 효과는 떨어진다는 이유다. 퇴직연금의 경우 임금 수준이 높은 대기업과 공기업 근로자 위주라 2020년 기준 가입 대상 근로자 중 52.4%만 가입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난 10일 연금 개혁을 주제로 열린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현행 40%)을 더 인하하면 공적연금의 기능이 더 약화돼 중산층을 사적연금으로 몰아낼 것"이라며 "노동시장 지위에 따른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차별적 수혜가 더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공적연금 개혁이 시급하지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주무부처 수장은 공석인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정호영 후보자 사퇴 이후 김승희 후보자가 새로 지명됐으나 국회 원 구성이 지연되면서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이사장이 2개월 가까이 공석인 국민연금공단은 복지부 장관이 임명된 후 이사장 공모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복지부 장관이 공석이거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구성되지 않더라도 정부가 연금 개혁에 대한 의지와 방향을 밝히면서 논의는 할 수 있는데 대선 이후 석 달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없다"며 "행정부와 정치권이 연금 개혁에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용경영학과 교수도 "여섯 차례 연금 개혁 논의에 참석하며 느낀 건 시간이 많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개혁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도 연금개혁을 약속했으나 2018년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보험료율 인상을 골자로 한 개혁안을 보고하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대통령 지시로 복지부가 '사지선다'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이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설치된 연금개혁특위도 단일안 도출에 실패했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연금개혁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향후 공적연금위가 개편안을 내놔도 결국 진행될 연금개혁의 성공은 정부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속도감 있게 추진하느냐에 달릴 전망이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혁의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결국 욕 먹는 일이니 정부가 하기 싫어 한다. 국회에서도 다수당이 책임을 질까 회피한다"며 "위원회만 만든다고 개혁이 되는 게 아니라 정부가 집중력과 결단력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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