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문 목사
철없고 배고팠던 시절 남의 집 담 넘은 전과자
목회자로 새 삶 살아도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
[남양주=뉴시스]이호진 기자 =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에게 버려진 뒤 “저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고 싶었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경기도의원에 출마하려다가 공천에서 배제된 목사 겸 사회복지사, 그리고 음악치료사인 김동문(57) 목사의 아쉬움 가득한 한마디다.
신학대를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온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1981년 10대 시절, 남의 집 담을 넘어 금품을 훔치려다 붙잡힌 특수강도미수 전과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첫 범행 이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불과 석 달 만에 또 다시 도둑질을 해 야간주거침입절도 혐의로 장기 10월·단기 8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20대 초반에도 야간주거침입절도와 특수강도 혐의로 검거돼 4년 간 수감됐다.
한 살 때 아버지를 잃은 아기 김동문을 어머니는 버렸다. 친척집에 맡겨진 그는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소년공으로 공장에서 일했다.
성장배경이 불우하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김 목사는 “소년공으로 일하며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공장이 망해서 남의 집 담을 넘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며 “그렇게 범죄자 꼬리표를 달고 나니 주변에서도 거리를 두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점점 없어졌다”고 돌아봤다.
“잘못된 선택을 반성하고 신학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힘이 돼준 분들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만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이 아이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연이겠지만, 40년 가까이 목회자로 살면서 주변에 자신의 옛 과오를 숨기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때로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도, 때로는 그들의 격려로 힘을 얻기도 했다.
관심사가 사회 복지와 지역사회 봉사뿐이던 김 목사가 정치에 눈을 돌리게 된 데는 노인요양기관이 있다. 노인요양시설 운영과 봉사 과정에서 불합리를 느꼈다.
복지 관련 일을 하다보니 이치에 맞지 않는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지원할 근거가 없어 발을 동동굴러야 했다.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사회의 제도적 변화는 더디기만 했다.
결국 ‘안 되면 직접 지원 조례를 만들어보자’라는 각오로 뒤늦게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의힘 입당 3년 만에 도의원 출마를 결심, 예비후보 등록 후 경기도의원 공천을 신청했다.
하지만 불발되고 말았다. 30년 넘게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 도지사상부터 보건복지부장관상까지 여러 상을 받았건만, 철없던 때의 범죄가 공천심사에서 발목을 잡았다.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범죄전력이 시끄러운 작금의 상황은 설상가상으로 작용했다.
김동문 목사는 “나 같은 사람도 정치에 입문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지 시민들에게 판단을 받고 싶었기에 공천 배제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면서도 “한편으로는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얽매이지 않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어 당에 무소속 출마를 허락받았다”고 했다.
“이제는 스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나를 놓아주겠다고 답했지만, 죽을 때까지 내 과오를 내 안에 붙들어 두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야 죽을 때까지 노력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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