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전문가들, 전쟁 '절정 단계' 평가…"앞으로 2주가 관건"
정밀무기 부족해진 러, 국면 타개 위해 민간인 무차별 공격
군과 민간 사상자 급증하는 참혹한 상태 이어질 듯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인력과 장비 손실이 과도해 빠르게 대도시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시키려던 당초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진 것으로 서방의 당국자들과 군사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이같은 내용의 분석기사를 실었다.
지난 1주일 동안 전선은 거의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러시아군은 하루 최대 1000명 정도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서방 정보기관들이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그보다 더 많다고 주장한다.
지난 19일 미 전쟁연구소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초기 작전을 무력화했다"면서 "러시아군이 키이우 주변 등 현재 점령하고 있는 지역의 정치적 우위를 굳히기 위해 보급과 병력 보충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의 전선을 무기한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연구소는 현 상태를 "교착상태"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일부 승리를 거두고 있으나 영국 군사정보국은 아직 도시들을 완전히 포위하지 못하고 있으며 남부 헤르손 지역만 계속 장악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처럼 진격이 정체되면서 러시아군은 민간인에 대한 잔인한 공격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으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위된 도시의 주민들이 주로 피해를 입고 있다. 또 러시아군은 장거리 미사일로 우크라이나군과 민간의 기반 시설을 공격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항전의지를 약화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진격하지 못하는 교착상태가 이어지면서 병사들이 사기를 잃고 있으며 병력이나 탄약급도 충분치 못해 갈수록 전쟁을 지속하기 힘들어질 것으로 서방 전문가와 당국자들이 밝히고 있다.
벤 호지 전 유럽주둔 미 육군 사령관은 "러시아 장군들은 시간, 탄약, 병력이 바닥나고 있다.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베를린 공수 때처럼 긴박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군이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건 잘못이며 전술을 바꾸고 보급을 강화함으로써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프러시아 군사전략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정점을 "교전 쌍방의 전력이 방어에 주력하면서 평화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해병 출신인 롭 리 외교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축출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러시아군도 더이상 진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이미 투입된 부대들을 유지, 보강하고 보급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중국에 대한 군사지원, 시리아 지원병 요청과 남오세티아와 조지아 주둔 러시아 병력의 우크라이나 투입 검토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런 노력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익명의 전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3주가 되도록 여전히 보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우크라이나 외부에서 자원을 구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리 선임연구원은 현재의 전쟁 지도에 러시아군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잘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은 초기의 전격전을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두번째 도시 하르키우를 점령하고 오데사까지 남부 해안 지역 전체를 장악하며 북부 진입 병력으로 수도 키이우를 장악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3주가 지나도록 러시아군은 이들 목표를 하나도 달성하지 못한 상태다. 북동부 도시 하르키우는 러시아 국경에서 가까운데도 완전히 포위하지 못하고 있고 오데사로의 진격은 미콜라이우 전투에 막혀 있다. 크름반도(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기 위한 마리우폴 전투 역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결정적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점령하려는 러시아군은 키이우에서 20여km 떨어진 곳에서 정체돼 있다.
이런 교착상태에서 러시아군의 사상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전투 훈련을 받은 거의 대부분의 병력을 투입한 상태다. 러시아는 168개의 대대전술단 19만명을 우크라이나에 투입했으며 이중 120개 대대 10만명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전투 경험이 있는 러시아군의 75%가 이미 투입된 상태라고 미 당국자들은 말하고 있다.
서방 정보당국은 러시아군 사망자가 최소 7000명, 부상자가 2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며 이는 전투병력의 3분의 1에 달하는 수준이다. 리 선임연구원은 "이같은 병력 손실은 보충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징집병이나 예비군을 추가로 투입할 수 있으나 이는 전투력 약화만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역시 사상자가 적지 않다. 영국 왕립군사연구소 잭 월팅 연구원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우크라이나군의 입지는 약화되고 러시아가 초기의 작전 실수를 만회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우크라이나군의 사기가 매우 높고 러시아군의 사기는 갈수록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러시아군의 공격력이 약해지면서 민간인 사상자가 늘고 있다. 교착상태를 뚫기 위해 러시아군이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으며 정밀 무기가 부족해진 것도 민간인 피해를 늘리는 요인이다.
월팅 연구원은 러시아가 물러서기는 커녕 오히려 전력을 강화하려고 함에 따라 민간인 사망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2주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1차대전 당시 교착상태에 빠졌던 솜므와 뵈르뎅 전투에서만 수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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