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태형 연출 "뮤지컬 '아몬드' 감정없는 아이, 더 울림 있어요"

기사등록 2022/03/19 06:11:06 최종수정 2022/03/19 06:24:44

손원평 원작 '아몬드' 뮤지컬로 4월 개막

"부담과 동시에 기대…다양한 실험 거쳐"

공감과 사랑 이야기…"마치 'SF소설' 같아"

'마리 퀴리'·'팬레터'·'리지' 등 다수작 연출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컬 '아몬드' 연출가 김태형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2.03.1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주인공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잖아요. 누가 봐도 슬프고 아프고, 또 기쁘고 행복한 상황인데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하고 노래하죠. 하지만 관객들은 아이가 본래 느껴야 할 감정을 알고 있잖아요. 그 감정을 대신 느끼며 오히려 정서적으로 더 울림이 있을 거예요."

지난 2017년 출간된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가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해외 20개국, 국내 판매 90만부를 돌파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제작사 라이브의 창작뮤지컬 공모전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의 2019년 최종 진출작으로 약 4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오는 4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아티움에서 초연을 올린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태형 연출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 부담도 되고, 기대도 된다"며 "무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보여드리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품은 뇌 속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알렉시티미아'라는 선천성 질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윤재'의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윤재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와 할머니는 그가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감정을 학습시키지만, 불의의 사고로 떠나게 된다. 홀로 남은 윤재가 주변인들과 겪는 갈등과 화해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의 소중함을 전한다.

◆"감정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 도전 과제…기존과 다른 문법 표현"

소설은 김 연출의 마음을 움직였다. 연출 제안을 받고 책을 읽어본 그는 "무대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고 했다. "관심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소수자와 약자 이야기이기도 하고, 청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여러 면에서 흥미로웠어요. 저도 아이가 있다 보니 부모 관점에서 보게 되는 시선도 있었죠. 감정의 교류나 공감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에서 통찰을 주는 부분도 있었어요."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컬 '아몬드' 연출가 김태형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2022.03.19. pak7130@newsis.com
소설을 통해 상상하던 모습은 무대로 펼쳐진다. 원작의 이야기 결을 그대로 살리며 각색을 많이 하진 않았고, 일부 장면은 압축·생략하거나 확장했다. 특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 표현은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도전 과제였다. 통상 드라마틱하게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주인공이 오히려 이를 감춰야 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방식도 담담하게, 발성이나 보컬 톤을 조절했다.

"여러 실험을 해봤어요. 기존 뮤지컬 문법과는 조금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 점들이 특히 작곡가에게 어려웠죠. 너무 (감정의) 변화가 있어도, 없어도 안 되기에 수위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어요.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캐릭터를 실제 눈앞에서 보게 되는 건데, 생각보다 다를 수도 있고 캐릭터를 관찰하는 지점이 흥미로울 거예요."

주인공 '윤재' 역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기상청 사람들' 등에 출연한 문태유가 맡았다. 2019년 개발 과정 쇼케이스부터 참여해온 홍승안도 나선다. 김 연출은 "기본적으로 연기를 신뢰하고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여러 감정이 묻어나는 좋은 배우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연습할 때 울컥하는 순간들이 꽤 있는데, 참아내고 있죠. 보고 있으면 감정적으로 더 터치하는 느낌이 있어요. 저는 다른 공연에서도 늘 관객이 감정을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해요. 배우들이 무대에서 감정을 다 표현하면 관객들이 느끼고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죠. 표현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마음으로 허락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죠."

그는 이 작품이 'SF소설'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SF소설에선 로봇이나 사이보그가 인간과 유사한 존재면서 감정이나 고통,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등 뭔가 하나가 결핍돼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관찰하게 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라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로 삶을 들여다보게 하고 감정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뮤지컬 '아몬드' 포스터. (사진=라이브 제공) 2022.02.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결국 공감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죠.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군가와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아야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윤재는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두 사람이 없어진 후엔 주변의 또다른 사랑으로 조금씩 교류하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죠."

◆2007년 데뷔해 연출 15년…"여성 캐릭터 주역 작품, 당분간 계속"

지난 2007년 연극 '오월엔 결혼할거야'로 데뷔한 후 뚜벅뚜벅 걸어온 이 길은 어느새 15년이 됐다. 연극, 뮤지컬뿐만 아니라 창극, 오페라 등 장르를 넘나드는 김 연출은 "기왕이면 재밌는 일을 하자는 주의"라며 "관객에게 돈을 받은 만큼 책임지고 좋은 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출가는 결국 이야기꾼인데, 어떻게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들려주느냐가 중요하죠. 신선한 걸 하고 싶고, 완전히 새롭진 않아도 이 장면만큼은 본 적 없는 조금은 새로운 걸 만들려고 계속 시도해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잘 버텨왔다"고 돌아봤다. 꾸준히 버티고 버티다보니 기회가 넓어졌다며, 전환점으로는 2012년 연극 '모범생들'로 대중적이면서 작품성을 잃지 않는 방향의 연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꼽았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컬 '아몬드' 연출가 김태형이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뉴시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2022.03.19. pak7130@newsis.com
"아쉬운 건 예전엔 관객을 더 가까이 느꼈는데, 지금은 좀 겁이 나요. 시대정신이나 세상에 들려줘야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옛날보다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관찰하게 되죠. 더 완성도 있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임감도, 두려움도 많아진 거죠."

그는 과학고를 나와 카이스트에 진학했지만 도중에 한예종 연극원에 들어간 공학도 출신 연출가다. "근사한 계기보다는 카이스트 생활의 실패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 등이 뒤섞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어쨌든 학창 시절 내내 수학, 물리, 화학을 공부했고, 그 과정이 연출 생활에 도움이 됐어요.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익혔고 하나씩 차근차근 생각하는 훈련을 많이 했죠. 연출로서 장면의 개연성과 논리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해요."

'대학로의 가장 바쁜 연출가' 중 한 명인 그는 오는 24일 개막하는 뮤지컬 '리지'도 맡고 있다. 2년 만의 재연인 여성 4인조 록 뮤지컬로, "더 과감하고 짜릿하게 돌아왔다"고 전했다. '리지'를 비롯해 여성 캐릭터가 주역인 작품은 지금의 그를 설명하는 한 대목이기도 하다. 뮤지컬 '아가사', '매디슨 카운티의 거리', '마리 퀴리'와 연극 '더 헬멧' 등 다양하다.

"언제부턴가 여성 주인공들 작품을 많이 하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여성 캐릭터를 더 연구하고 들여다보게 됐죠. 이전부터 추구했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이야기, 나아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는 걸 한동안 해왔고, 또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게 중요한 지점이 됐죠.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몰랐던 것도 많지만 당분간 계속 갈 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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