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준금리 인상·러시아 디폴트 등 악재 겹겹이
무역수지 악화, 원화 약세로 이어져
"더이상 전망은 무의미하다" 지적도
유가 다시 오르면 1300원 돌파할 수도
이번주 1250~1260원 피크 찍을 듯
15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232.0원) 대비 10.3원 오른 1242.3원에 마감했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 보다 5원 오른 1237.0원에 출발했다.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현실화, 홍콩 증시 급락 등 대내외 악재가 맞물리면서 오후 들어 상승 폭을 키우며 지난 8일 기록한 연고점(1238.7원)을 3거래일 만에 다시 갈아치웠다. 종가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이 1240원을 넘은 것은 2020년 5월 25일(1244.2원)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커지자 지난 11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미 달러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전장 대비 0.64% 오른 99.130에 마감했다. 연초 95~96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큰 폭 오르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가능성, 러시아 디폴트 우려 현실화 가능성,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급등) 우려에 따른 미국 등 주요국의 긴축, 미중 갈등 격화로 인한 홍콩 증시 급락, 중국 선전(深圳) 락다운(봉쇄령) 등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있다.
우선, 시장에서는 미국 등 서방 국가의 금융제재로 러시아의 디폴트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오는 16일(현지시간) 달러화 표시 채권에 대한 이자 1억2000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 또 31일에는 3억 5900만 달러, 다음달 4일 20억 달러의 원금과 이자 상환을 앞두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16일 이자를 갚지 않더라도 곧바로 디폴트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러시아 정부와 기업의 디폴트 적용 여부는 수주가 소요될 수 있고, 유예 기간도 외화채는 15~30일, 루블화 국채는 10일이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홍콩 증시가 곤두박칠 치고 있는 점도 투자 심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FC)는 뉴욕 증시에 상장된 5개 중국 기업의 퇴출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중국에 대한 제재가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항셍지수가 2만선이 붕괴되고 홍콩 H지수도 7000선 아래로 내려가는 등 홍콩 주요 지수는 곤두박질 쳤다. 항셍지수는 이날 전일 대비 1012.29포인트(4.93%) 하락한 1만9541.50에 거래를마쳤다. 2016년 3월 1일(1만9407.46) 이후 6년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홍콩 증시 상장 중국기업주 중심의 홍콩 H지수도 전일보다 505.05포인트(7.15%) 급락한 6555.55로 마감했다.
중국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광둥(廣東)성 선전이 봉쇄 조치에 돌입한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전시 방역 당국은 13일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14일부터 20일까지 일주일 간 도시를 봉쇄한다고 밝혔다. 전날 선전시에서는 신규 확진자가 66명 나왔다. 코로나19로 중국 4대 도시 중 한 곳이 봉쇄되는 것은 처음이다. 선전은 인구가 1700만명이고, 연간 수출액이 1조9000억 위안(한화 370조원)에 달하는 등 중국 전체 수출의 9%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3년 여 만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는 점도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 미 연준은 오는 15∼1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현재 연 0~0.025%인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이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여 금융 불안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여기에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면서 스태그플레이션도 현실화 될 것이란 우려까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원유 의존도가 높아 다른 국가들보다 원화 약세 등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5월물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한국시간으로 14일 오후 6시 2분 현재 배럴당 109.28달러에 거래중이다. 지난 7일에는2008년 7월 이후 최고치인 장중 139.13달러까지 치솟은 바 있다.
악화되고 있는 무역수지 역시 원화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 무역 적자로 수급 측면에서 달러 공급이 부족해 졌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유가상승 등으로 지난해 12월(5억 달러 적자)과 지난 1월(48억3400만 달러 적자) 2개월 연속 적자를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후 2월 반도체와 석유제품 수출 호조세로 흑자 전환했으나 8억4100만 달러로 예년(33억 달러)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원·달러 환율은 전망치를 내 놓기 무섭게 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어 전망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원·달러 환율이 1300원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게 되면 종가 기준으로 2009년 7월 13일(1315원) 이후 12년 8개월 만이다. 또 이번주 내 환율이 피크(정점)를 찍으면서 1250~126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리스크가 장기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원·달러 환율 상단을 1230원대로 봤었는데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서면서 더 이상 상단을 전망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라며 "협상을 통한 우크라이나 사태 해소 가능성이 낮아진 반면 미국과 러시아간 강대강 대립 구도가 강화되면서 달러화 강세 심리를 더욱 자극하고 있어 상단을 충분히 더 열어둘 필요가 있다" 말했다.
박 연구원은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내려갔지만, 이번주 미 연준의 FOMC를 앞두고 있고, 러시아 디폴트 가능성과 중국 금융시장 불안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러시아의 디폴트가 현실화 되고 국제유가도 다시 치솟을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로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러시아 디볼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환율이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주 내 원달러 환율이 고점인 1260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 연구원은 "러시아 디볼트 가능성 뿐 아니라 중국 선전 락다운, 뉴욕 증시에서 중국 기업 퇴출 가능성으로 인한 홍콩 증시 폭락 등으로 악재가 겹쳐 있는 상황"이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된다면 그동안의 상승폭이 상당 부분 되돌려질 수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워 보이고, 전쟁 장기화 우려로 에너지·식료품 가격 상승이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경우에도 달러 강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동유럽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등 주요국들의 유동성 회수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이번주 중 원·달러 환율이 125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 졌다"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대로 내려갔는데 추가 상승 여부와 미 증시에서 중국 기업 퇴출 등 홍콩 증시 하락 향방에 따라 원·달러 환율 변동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민 연구원은 그러나 환율이 1300원대까지 급등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그는 "코로나19 위기 초기인 지난 2020년 3월에는 미국, 홍콩 등 해외 증시가 폭락하면서 이에 연계된 주가연계증권(ELS)를 판매한 증권사들이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통지)에 직면해 달러 수요가 급증하면서 1290원까지 올라갔었다"며 "지금은 이미 외국인 자금이 많이 빠져 나가 조정을 받고 있고, 패닉 바잉(공포 매수)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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