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크림반도 합병 뒤 서방 제재는 러시아 회피했지만
달러 거래 금지 등 이번엔 큰 타격 입을 수밖에 없다 분석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 서방이 제재를 가했지만 러시아를 항복시킬 정도의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요새화" 전략을 구사한 때문이었다.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금을 사들이고 중국에 대한 수출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서방은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침공시 부과할 제재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러시아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견딜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마당에 서방의 제재 위협만으로 러시아가 물러서게 될 지 분명치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6일 "러시아의 제재 회피 노력에 허점 노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제재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는 기사다. 다음은 기사요약이다.
미국이 25일 러시아 경제의 핵심 부문에 대한 제재 부과와 수출통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위 당국자가 중국의 화웨이사에 대해 제재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장비, 소프트웨어와 기술을 사용해 생산된 각종 반도체칩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자들은 그밖에 러시아 은행의 달러사용을 금지하고 러시아 에너지 수출을 제한하는 것도 검토중이라고 말해왔다.
이에 대해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기분은 나쁘지만 금융기관들이 감당할 수 있다"며 러시아가 제재에 준비돼 있음을 밝혔다.
러시아가 달러 의존도를 줄이고 해외 채무를 줄인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 정부는 예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해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20% 미만이다. 미국은 133%다.
러시아는 또 금융 충격을 완화하는 능력도 구축했다. 금과 외환보유 규모가 지난 12월 역대 최고액인 6300억달러(약 755조550억원)에 달했다.
러시아는 2014년 서방의 경제제재에 대응해 과일, 채소, 육류, 낙농제품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당시 프랑스산 치즈는 러시아 중산층의 생필품이었다. 이후 기계류와 기술 도입선을 다른 나라로 돌리고 국내 생산을 장려했다.
한편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크게 늘렸다. 지난 2019년 러시아는 중국에 새로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준공했고 양국의 교역규모가 연간 1000억달러(약 119조8500억원)으로 확대됐다.
블루베이 자산 운영사 신흥국주권 선임전략가 티모시 애시는 "푸틴이 2014년부터 오늘에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가장 취약한 부문이 기술 부문이다. 전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 대만, 한국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러시아는 구세대 반도체 공장이 있을 뿐이며 부품과 특허를 서방회사에 의존한다.
미국은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제재 정책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통제한다는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화웨이에 적용한 방식이다. 유럽 당국자들은 또 첨단기술 제품 등에 대한 수출금지를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유럽의 수출금지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지는 아직 미정이다.
수출제한이 부과되면 러시아는 기계 부품, 스마트폰 등 가전소비재를 살 수 없게 된다고 분석가들이 밝히고 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의 경제 현대화 노력에 경제적 타격을 가하게 된다.
러시아에 부과된 금융제재가 성장과 투자를 저해해 왔으며 러시아 정부는 국영기업을 지원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어 왔다. 그 결과 러시아의 GDP는 2014년 이래 전세계 평균 성장률에 미달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크림반도 합병 이전보다 가난해졌다. 2020년말 실질 소득의 2013년보다 9.3% 떨어졌다.
국제금융기구(IMF)는 2014년~2018년 러시아 성장율이 금융제재로 인해 0.2%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러시아의 제재 회피 노력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러시아의 달러화 수출 비율은 80%에서 56%로 떨어진 상태다. 민간 부문은 더 많이 의존하고 있고 달러는 여전히 지역 외환시장에서 주거래 대상 화폐다.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마리아 샤기나는 "러시아는 이번에는 준비가 돼 있겠지만 그렇다고 제재효과가 경제전반에 효과를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 미 재무부 제재 전문가 출신으로 애틀랜틱 카운슬 연구원인 브라이언 오툴은 최근 준비되고 있는 제재가 "경제에 큰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즉각적인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자산시장은 이번 주 투자자들이 제재를 예상해 투매하는 바람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루블화와 국내 주식 모두 몇달 내 최저치를 갱신했고 러시아 CDS 프리미엄은 팬데믹 시작 이래 최고치로 올랐다. JP모건의 전략가들은 25일 투자자들에게 "과도하게 높은" 지정학적 불투명성을 이유로 루블화 장기투자를 중단하도록 권고했다.
경제난이 심화되면 푸틴에 대한 지지율도 하락할 것이다. 이미 지난 2015년 90%에 달한 푸틴의 지지율은 지난달 65%까지 떨어졌다.
서방 협상가들이 아직 논의대상으로 삼지 않는 가장 강력한 제재 방안으로 러시아를 국제은행간결제망(SWIFT)에서 축출하는 방안이다. 전세계 200여국의 1만1000여 금융기관들이 러시아 금융기관과 달러 거래를 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 제재가 부과되면 러시아는 중앙은행의 금융메시지전송시스템(STFM)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 모든 은행이 이 방식을 통해 송금한 사례는 2020년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또 해외에서 이 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고 오직 중국만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의 달러 접근을 차단하면 러시아와 세계 사이의 연결이 끊어짐으로써 국내총생산(GDP)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고 독일국제 및 안보문제연구소 동유럽 전문가 야니스 클루게가 밝혔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제 교역은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부수효과로 자본이 빠져나가고 루블화가 폭락하며 급격한 물가상승이 초래될 수 있다.
ING 은행 모스크바 주재 경제학자 드미트리 돌긴은 봅 메넨데즈 미 상원의원이 제안한 제재 법안에 포함된 12개 금융기관중 9개가 국내 은행간 거래의 40%를 차지하며 기업금융과 투자의 8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이들 은행이 제재를 받을 경우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것이다.
러시아 에너지 회사들에 대한 제재도 러시아 경제의 핵심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게 된다.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은 러시아 GDP의 5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석유 메이저사인 PJSC 로스네프트 등 일부 회사들은 이미 제재를 받고 있지만 미국은 그들에 대한 금융지원을 금지하고 해외 자회사를 추적해 제재할 수 있다고 분석가들이 말한다. 광산과 금속 회사들도 금융제재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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