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새 다섯 분이나' 스러져가는 민주열사들..."세월이 야속"

기사등록 2022/01/10 16:40:57

지난 한해 강신석 목사, 전춘심 열사, 노희관·송기숙 교수


[광주=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9일 오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사진은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의 빈소. (사진=청와대 제공) 2022.01.09.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지난 9일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 여사의 타계를 계기로 최근 세상을 떠난 지역 원로 민족민주열사들의 삶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10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 동안에만 강신석 목사, 전춘심 열사, 노희관 교수, 송기숙 교수 등 4명의 민주열사들이 별세했다. 이들은 생애를 바쳐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한국사회와 광주가 나아 가야 할 방향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기념사업회는 설명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반독재 투쟁과 인권 증진에 일생을 헌신해 '민주화운동의 거목'으로 불린 강신석 목사가 5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3세. (사진=광주 YMCA 제공) 2021.02.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강 목사는 1938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를 거쳐 한신대 신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남 해남 송석교회를 시작으로 무안 해제중앙교회, 목포 영동교회, 광주 무진교회 등에서 담임목사를 지냈다.

유신반대와 5·18민주화운동 등의 사회활동에 투신한 그는 특히, 김영삼 정권 시절 '5·18 특별법 제정 투쟁' 등 서명운동을 벌여 100만 여명 서명을 받는 등 큰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전교조 탄생과 해직교사 뒷받침, 남북화해에 앞장서 2007년 참교육상, 2019년 한신상, 2021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했다.

강 목사는 지난해 2월5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19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전옥주(전춘심)씨 유해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전씨는 5·18 당시 시민 참여를 호소하는 가두 방송으로 항쟁을 이끌었다. 2021.02.19. wisdom21@newsis.com

1980년 5월 당시 평범한 무용교수였던 전 열사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금남로에 나갔다가 5·18의 참혹한 진실을 목격한 이후 동구 학운동사무소에서 스피커와 마이크를 구한 뒤 가두방송을 시작했다. 시민대표로 선정된 전 열사는 당시 장형태 전남도지사와 면담하면서 광주 시민들의 안위를 보장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 해 5월23일 계엄군에 의해 간첩으로 몰린 전 열사는 연행돼 끝에 모진 고문에 시달렸다. 민주항쟁 이후에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1년간 광주교도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 출소 이후에는 1989년 국회청문회에 출석해 5.18 당시 참상을 알렸다. 이후엔 5.18여성 동지회를 조직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왔다.

전 열사는 지난해 2월16일 7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뉴시스] 고 노희관 전남대 명예교수(4.19전국통일의병대 총사령관). (사진=뉴시스DB) 2013.11.23. photo@newsis.com

노 교수는 전남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민주항쟁에 투신했다. 1980년 5월 당시 전남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그는 시위에 직접 참여하고 학생들을 도왔다. 이 때문에 보안사로부터 수배령이 떨어졌으며,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결국 노 교수는 가족들의 안위를 위해 505보안부대에 직접 찾아가 투옥됐다. 민주인사, 5·18시민군 등과 함께 투옥된 그는 1980년 7월 전남대학교에서 강제 사직됐다.

1984년 복직 이후 노 교수는 광주의 여러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겸하며 5·18의 진상규명에 발 벗고 나섰다. 2019년 뇌경색을 앓은 노 교수는 전두환씨의 사망 다음날인 지난해 11월24일 세상을 떠났다.
[광주=뉴시스]고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 2019.06.03 (사진=전남대 제공)photo@newsis.com

송 교수는 1965년 현대문학 '이상서설'을 통해 소설계에 등단, 그동안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8년 전남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학내 교수 10명과 함께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1980년 5·18 당시에는 학생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내란죄 명목으로 10개월을 복역하기도 했다.

이 때의 기억을 살려 5·18 당시의 구술 기록을 담은 '오월 민중항쟁 사료 전집'을 펴내는 등 5·18 진상규명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또 소설가로도 활동하면서 1973년 현대문학상을 비롯해 만해문학상(1994), 금호예술상(1995), 요산문학상(1996), 후광학술상(2019) 등을 받았다. 특히 그가 쓴 소설 '녹두장군'은 부패한 봉건사회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형상화한 대표작이다.

송 교수는 지난해 12월7일 영면했다.

양금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업국장은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셨던 분들이 세월을 못이기고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며 "떠나 가신 분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사회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다. 이들의 뜻을 이해하고 계승하는 동시에, 이들이 보여준 헌신을 모든 사람들이 가슴 속에 품고 살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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