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패스 흔든 법원…감염병 전문가들, 후폭풍 우려

기사등록 2022/01/05 06:00:00

법원, 학습권·신체 자기결정권 등 '자유' 무게

방역패스 시설 17종 전체 소송 번질 가능성

복지부 "미접종자 보호·의료 여력 위해 필요"

전문가 "변이 확산 우려…기폭제 되지 않길"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관계자가 안내문을 게시하고 있다. 2022.01.05. kkssmm99@newsis.com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법원이 학원, 스터디카페, 독서실 등에 대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함에 따라 정부의 방역패스 제도 자체가 흔들리게 됐다.

방역을 내세운 당국과 달리 법원은 미접종자의 학습권과 신체 자기결정권 등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어, 추후 방역패스가 적용되는 다른 시설로도 소송이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5일 감염병 전문가들은 재판부의 이번 효력정지 판결이 방역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 "국가의 코로나19 방역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날 서울행정법원 제8부는 보건복지부(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학원과 독서실, 스터디카페를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로 포함한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학부모·사교육 단체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 본안소송 판결 선고일까지 해당 시설의 방역패스 효력을 정지했다.

판결 이유를 살펴보면 헌법상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학습권, 신체의 자기결정권 등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백신미접종자는 학원, 독서실 등을 이용할 때 48시간 내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 완료자 집단에 비해 불리하게 차별하는 조치"라고 봤다.

법원은 특히 감염병 위험을 막고 미접종자를 보호하기 위해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방역패스 정책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백신접종자에 대한 돌파감염도 상당수 벌어지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미접종자에 대해서만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미접종자 집단이 백신접종자 집단에 비해 코로나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다"며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존중돼야 하며 결코 경시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림에 따라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 등을 제외한 다른 방역패스 적용 시설 관계자들이 우후죽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생겼다.

방역패스가 적용되는 시설은 ▲유흥시설 등(유흥주점, 단란주점, 클럽(나이트), 헌팅포차, 감성주점, 콜라텍·무도장) ▲노래(코인)연습장 ▲실내체육시설 ▲목욕장업 ▲경륜·경정·경마/카지노(내국인) ▲식당·카페 ▲학원 등 ▲영화관·공연장 ▲독서실·스터디카페 ▲멀티방 ▲PC방 ▲스포츠경기(관람)장(실내) ▲박물관·미술관·과학관 ▲파티룸 ▲도서관 ▲마사지업소·안마소 ▲상점·마트·백화점(3000㎡ 이상) 등이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오른쪽부터) 이상무 함께하는사교육연합 이상무 대표, 함인경 변호사, 김수진 전국학부모단체연합 대표가 지난해 12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행정법원에 방역패스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소장을 제출하러 들어가고 있다. 2022.01.05. xconfind@newsis.com
전체 방역패스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고교생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결과도 남아있다.

재판부의 결정에 대해 정부와 방역 당국, 감염병 전문가들은 향후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등을 대비해서라도 방역패스 제도의 큰 틀은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전날 효력정지 결정에 대해 항고를 검토하고 추후 본안소송도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3월1일 시작하기로 했던 청소년 방역패스 실시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복지부는 "성인 인구의 6.2%에 불과한 미접종자들이 12세 이상 확진자의 30%, 중증환자 사망자의 53%를 점유하는 상황"이라며 "현 시기에는 미접종자의 건강상 피해를 보호하고 중증의료체계의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방역패스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유행이 한풀 꺾이는 상황이지만 2월 중하순이면 오미크론 변이가 전체 유행을 주도하면서 확진자가 양상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면서 "재판부가 학습권을 강조했지만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 지금처럼 등교가 중단된다면 이 역시 학습권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판부에서 코로나19 유행과 위중증·사망자 등 관련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고 본다"며 "이번 판결이 국가의 방역 전반에 제동을 거는 기폭제가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최은화 서울대 어린이병원 교수는 "학원이나 스터디카페, 독서실은 상대적으로 저위험시설이고 학생·학부모들에게는 학교처럼 매일 가는 시설로 인식돼 재판부가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다른 방역패스 적용시설까지 효력을 정지하는 상황이 되면 국가의 코로나19 방역체계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몇 주 후에는 전파력이 빠른 오미크론 변이가 대세가 될텐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접종, 이동량 줄이기가 관건"이라며 "정부와 방역 당국도 국민들에게 향후 위험과 문제를 충분히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yh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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