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문학상 수상한 최재원 시인 첫 시집
최재원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체와 이름, 정체성을 허물처럼 벗으며 다른 존재로 자유롭게 건너간다.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에서 인물들의 신체는 끝없이 변한다. 변할 뿐만 아니라 몸에서 몸으로 이동한다. 곰팡이나 비늘이 돋아나기도 하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여러 몸을, 여러 정체성으로 하나의 몸을 공유하기도 한다.
'너와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를 박제하고 싶다. 약품 처리된, 내장이 없는, 까맣게 구슬이 되어 버린 눈동자, 그런 박제 말고 너의 가장,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이 너의 가장 아득한 곳을 담을 수 있도록,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숨도, 생명도, 심지어 내장이 라 할지라도. 너만은 시간의 흐름에서 구해 주고 싶다. 그것은 박제와 가깝지만 박제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흔들림의 보장, 니가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서 있을 자유, 니가 끝없이 스스로에게 빠져들 자유, 끝없이 자신을 소모할 수 있을 힘.'('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 중)
'색이 없어진다는 것이 주는 만족감. 명도와 질감으로만 된 세상. 그것은 조금 덜 혼란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이거야. 색을 없애는 것. 이것이 내가 찾던, 몸으로부터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완전한 소멸이자 새로운 탄생이 될 것이다. 한번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모든 것이 아다리가 맞았다. 나는 몸을 태우고, 색을 없애고, 완전히 소멸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몸 밖으로의 완전한 이사를 뜻한다고 확신했다. 이것이야말로 어떤 궁극적인 이사가 될 것이다.'('말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중)
형식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무한한 자유로움이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하이쿠처럼 아주 짧고 강렬한 시, 익숙하게 보아 온 운율의 시부터 특유의 리드미컬한 흐름을 끌고 가는 장시, 압도적인 분량 안에서 쉼없이 변주되는 운율의 산문시에 이르기까지 총 80개의 시편이 실렸다. 시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형식을 구현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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