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혈세로 틀어막나…'대책 없는' 한전의 탄소중립 대응

기사등록 2021/09/05 07:00:00

상반기 기후환경비용으로만 1.75조원 '펑펑'

재무구조 악화 속 에너지 전환 비용만 '쑥'

영업비용 내 RPS 비용 비중 5.5%까지 늘어

작년 기후환경비용 2조5천억…증가세 지속

법 개정 등으로 정책비용은 계속 늘 수밖에

올해 영업적자 1.5조 예상…결국 국민 부담↑

[세종=뉴시스]한국전력 나주 본사. 2021.09.04.(사진=한국전력 제공)


[세종=뉴시스] 고은결 기자 = 올해 연간 적자가 우려되는 한국전력공사가 상반기 기후·환경비용으로만 1조7500억원 이상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연료비 연동제' 시행 유보로 올 상반기에만 2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낸 가운데, 탄소중립 대응에 조 단위의 막대한 지출을 한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에 따른 정책비용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는 결국 세금 등이 투입돼 국민들에 부담을 전가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표=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5일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전으로부터 입수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비용 비중 및 기후·환경비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최근 5년간 한전이 지급하는 RPS 비용은 꾸준히 늘었다.

RPS는 설비용량 500㎿ 이상의 발전사에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사업자가 전체 발전량의 일정량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제공하게 의무를 부과한 제도다. 한전은 발전사업자들이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비용과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구매 비용을 보전하고 있다.

이에 따른 한전의 RPS 비용은 2016년 1조4104억원, 2017년 1조6120억원, 2018년 2조163억원, 2019년 2조474억원, 2020년 2조2470억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는 6월 말 기준 1조6773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비용 내 RPS 비용의 비중도 2016년 2.5%, 2017년 2.8%, 2018년 3.2%, 2019년 3.3%, 2020년 4.1%로 늘어왔고, 올해 상반기에는 5.5%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RPS 비용에 더해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비용까지 포함한 전체 기후·환경비용도 2016년 1조5159억원, 2017년 1조9713억원, 2018년 2조1529억원, 2019년 2조6028억원, 2020년 2조5071억원으로 늘어났고 올 상반기에만 1조7553억원을 기록했다.

(표=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적자 수렁 빠진 가운데 정책비용 증가세 예견된 상황
기후·환경비용의 지출 확대와 별개로 한전의 재무구조는 악화일로다. 올해 상반기 실적을 보면 적자전환해 영업손실 1932억원을 기록했다. 전력 판매량이 늘어났음에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연료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제 연료비에 영향을 받는 실적 변동성을 줄이려 지난해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정부가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해 시행을 유보하며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지 못했다.

하반기도 유가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료비 연동제 시행에 또다시 제동이 걸리면 적자 수렁에서 벗어나기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

한전의 부채는 지난 6개월간 5조원 가까이 불어났다. 한전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연결기준 부채총계는 137조2902억원으로 지난해 말(132조4753억원)보다 약 4조8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187.5%에서 197%로 약 10%포인트(p) 증가하고, 유동부채 증가로 인해 유동비율은 79%에서 69%로 떨어졌다.

문제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에 따른 한전의 정책비용은 앞으로도 고공행진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개정안이 오는 10월2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연도별 RPS 상한을 현행 10%에서 25%까지 확대해 내년 의무공급량부터 적용한다. RPS는 2012년 2%로 시작해 매년 1% 이내에서 비율을 올렸고 올해 적용된 의무공급량 비율은 9%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추가 확대하는 법 개정으로 한전의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RPS 비율 상향으로 한전이 보전하는 RPS 의무이행비용도 늘 수밖에 없어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RPS 비용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기존의 정책 비용은 물론 환경비용까지 늘며 한전의 부담이 커지고, 이는 결국 전기료 인상 등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8.31. photo@newsis.com

최근에는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전기료 인상 압박이 더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10월 중 탄소중립위원회를 통해 2030 NDC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올해 영업손실 1.5조 예상…"조정요금·원자재값 하락 없이는 불확실성 지속"
NDC 상향에 따라 전기료 인상 요인은 더 강화되지만, 국민 생활과 맞닿은 공공요금인 만큼 당장 인상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에 따라 전기료 인상 유보 시 결국 한전의 적자 누적, 부채 증가가 지속될 것이란 견해가 나오는 배경이 나온다.

한전은 당장 이달 중 4분기 전기요금 변동안을 작성해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연료비 연동제에 비춰보면 3분기 연료비 상승세로 인상 압박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소비자 물가 상승, 내년 대선 등을 의식해 쉽게 인상을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란 해석이 대체적이다.

이와 관련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난 2일 한국자원경제학회와 한국에너지학회가 '2030년 NDC 목표 상향과 한국경제'를 주제로 진행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전기료를 제때 올리지 못하는 경우 한전의 적자 누적과 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 있고, 가격의 수요 조절 기능 상실로 오히려 전력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인근 문을 닫은 상점에 전기요금 고지서가 놓여 있다. 2021.08.02. xconfind@newsis.com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 입장에선 전기료 인상도 여의치 않은데 탄소중립 대응에 필요한 재원은 꾸준히 늘 수밖에 없어 재무건전성이 악화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비용 외에도 한전공대로 불리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설립·운영 비용 등도 중·장기 지출 요소로 꼽힌다. 공기업인 한전의 부실화는 결국 세금으로 돌아가 국민 부담만 한층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도 올해 한전의 연간 실적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와이즈리포트에 따르면 한전의 올해 연간 실적 컨센서스(추정치)는 매출 59조4297억원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하지만,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1조4705억원, 2조1082억원으로 적자전환이 예상된다.

이종형 키움증권 연구원은 "4분기 전기요금이 최대 3원/kWh 인상된다 하더라도 연료비가 빠르게 하락 반전하지 않는 이상 수익성 정상화에는 상당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라며 "연료비 연동제의 확실한 정착, 원자재 가격의 추세적 하락 전환 중 하나라도 없다면 한전의 실적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라고 관측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ke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