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 법학자들 시각…"사전검열 하란건가"

기사등록 2021/08/28 10:01:00

법학자들이 본 언론중재법 독소조항은

고의·중과실 추정, 언론자유 일방적 제한

"과실도 아닌 고의·중과실을…매우 이례적"

"미국도 입증 책임 원고에 지도록…정반대"

"언론 피해자 항상 약자?…가정 자체가 문제"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성재호(왼쪽부터) 방송기자연협회장, 김동훈 기자협회장,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변철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이 지난 27일 서울 중구 언론노조에서 '언론현업 5단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5개 단체는 방송기자연협회,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2021.08.27.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위용성 기자 = 여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언론계는 물론 학계와 정치권에서도 언론·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28일 학계 등에 따르면 무엇보다 고의·중과실 '추정'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같은 '독소조항'은 언론의 사전검열 효과를 가져오고, 과거 '국정농단' 등 권력을 겨냥한 의혹 제기나 '미투' 등 성폭력 고발 보도를 매우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개정안 제30조의2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재산상의 손해를 입거나 인격권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 언론보도에 대해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 ▲정정보도·추후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를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보도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에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사실상 소송이 제기될 경우 고의적인 조작 보도가 아님을 언론사나 기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예훼손 등 민사사건에선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입증하라는 게 대원칙인데, 이 경우에는 입증 과정에서 압박에 시달리는 언론이 취재원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언론이 사전적인 '자기 검열'에 빠져 적극적인 의혹 제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보호라는 문제에서 일방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라며 "미국에선 언론의 자유를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에 해당하는 가치로 보고 입증책임을 원고에 지도록 한 것과 정반대로, 이 개정안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법학교수회도 지난 23일 입장문을 통해 "이같은 '추정'은 통상 환경·의료·약해소송 등 현대형 소송에서 과실과 인과관계의 증명이 곤란한 경우 손해배상을 인정하기 위한 장치"라며 "언론 관련 허위·조작보도의 경우는 증명책임과 관련해 그렇게 할 필요성이 없고, 나아가 과실의 추정을 넘어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국정농단' 사태 등 권력을 겨냥하는 의혹 보도의 경우, 최초 보도 이후 다수의 보도가 연쇄적으로 나오면서 실체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 후에는 최초 보도부터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성폭력 의혹 등 사실상 피해자 증언에 의존하는 폭로형 보도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사내 성폭력 사건을 은폐했다고 가정할 때, 피해자는 회사를 상대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없지만 이를 고발하는 언론사는 보도에 부정확한 사실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개정안은 언론 보도에 따른 피해자는 무조건 약자라는 가정을 하고 있고, 이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직 고위공직자,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임원을 언론중재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가족이나 퇴직 고위공직자 등은 여전히 이 법을 활용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불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씨를 언급, "이 법이 있었다면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라고 썼다. 또 "고위공직자가 되기 전인 장관 후보자들은 어떤가. 언론의 검증이 없었다면 조국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서울=뉴시스] 조성우 기자 =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벽에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한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2021.08.25. xconfind@newsis.com
열람 차단 규정 등도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사 제목 또는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을 경우 ▲개인의 신체·신념·성(性)적 영역 등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등엔 인터넷신문사업자 등에게 언론보도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역시 모호한 기준 탓에 기사 일부분을 문제삼아 열람을 차단해달라는 청구가 남발하게 되고, 이것이 받아들여질 경우 사실상 '기사 삭제'와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짜뉴스가 몇 년이 지나 종국에는 진짜 뉴스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는데, 당장에 가짜뉴스로 판단한다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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