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요 급증할 가능성 제기
갈 곳 없는 실수요자들, P2P·대부업 등으로 내몰릴 듯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이 전날부터 오는 11월 말까지 신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전면 중단한데 이어 우리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을, SC제일은행은 일부 주담대 취급을 중단키로 했다. 또 카카오뱅크는 개인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1배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더해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을 향해서도 신용대출 한도를 제한하라고 요구, 대출중단을 단행하는 은행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간 당국이 가계부채를 조이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를 해온 만큼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나, 대출중단 조치까지 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반응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의 추가 규제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도 미리 받아두자는 '가수요'가 늘어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간 새로운 대출 규제가 나올 때마다 선수요가 몰리면서 대출잔액이 폭증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
앞서 금융당국은 1단계로 지난 7월부터 1억원을 초과하는 신용대출을 받는 이들에 차주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키로 했다. 또 2단계로 내년 7월부터는 1단계 적용대상과 함께 총 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하는 대출자들에 확대 적용하고, 2023년 7월부터는 총 대출액 1억원을 초과하는 차주들에 모두 적용키로 했다. 하지만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2023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한 DSR 규제 강화방안의 추진 일정이 적정한지도 들여다보겠다"고 밝히면서, 단계적 시행 시기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리 한도 직전까지 신용대출을 받아두려는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전날 은행 창구에는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일단 접수하겠다"거나 "주담대를 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가능한지" 등은 묻는 고객들의 문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비대면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최대한 개설해두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가수요가 급증할 경우, 농협 외 타 은행들의 올 가계대출 증가한도 역시 소진이 빨라져 대출중단 조치가 전 금융권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1·2금융권 대출길이 모두 좁아지면서 실수요자들이 대부업이나 P2P금융 등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도 우려된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에 신용대출 한도를 제한하라고 요구했고,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의 DSR비율을 은행권 수준으로 낮출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차주별 DSR 한도는 은행권이 40%, 비은행권은 60%가 적용된다. 고승범 후보자도 "2금융권의 느슨한 DSR 규제 수준이 풍선효과를 유발할 가능성은 없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필요하면 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는 "잔금일을 앞두고 대출이 막혔다"며 P2P와 대부업 대출을 문의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P2P나 대부업은 DSR 등 정부의 대출규제를 적용받지 않지만, 금리 수준과 위험도가 높다. 이 때문에 정부의 '대책없는 대책'으로 인해 애꿎은 실수요자들만 피해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서도 정부의 대출규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주목된다. '신용대출,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대폭 줄인다는 금융위의 권고 철회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제목의 글에서 청원인은 "금융위 (혹은 정부)의 입장에서 대출 총량에 대한 걱정은 이해하지만, 그 해결책을 이리 간단하고 단순하게 결정해서 시행하다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서민을 잡는 정책은 그만 좀 만드시고 이번 대출 규제는 철회해 달라. 또 사회 문제들의 근본원인을 찾는 시간부터 가지고 심사숙고해 정책을 수립해 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번 농협은행발(發) 신규 대출중단이 타 은행들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농협은행과 농협중앙회는 올해 가계대출 취급 목표치를 매우 높은 수준으로 초과했고, 증가세가 높은 '주택구입용 대출' 등의 한시적 취급중단 조치 없이는 연중 목표치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자체적인 판단 하에 단행한 조치라는 것이다.
금융위는 "농협은행·농협중앙회와 달리, 대형 시중은행을 포함한 대다수 금융회사들은 가계대출 자체 취급 목표치까지 아직 여유가 많이 남아있다"며 "따라서 농협은행·농협중앙회의 주담대 등 취급중단과 같은 조치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SC제일은행 역시 연간 자체적인 리스크관리 기준에 따라 일부상품의 공급을 조절한 것이며, 이는 예년에도 종종 있었던 통상적인 리스크관리·한도관리 노력"이라며 "우리은행의 전세대출은 10월부터는 대출이 재개될 예정이며, 경영마케팅 사유에 따른 SC은행의 상품중단을 농협의 사례와 연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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