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경 강신무·강영호 사진작가 '접신과 흡혼'
'샤머닉 밴드' 추다혜차지스·'접신록' 악단광칠 주목
지난 11일 오후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접신과 흡혼' 무대. 황해도 굿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해경 강신무가 무령(巫鈴·무당이 굿을 하거나 점을 칠 때 사용하는 방울)과 오색천으로, 악한 기운을 내몰았다. 일반인으로 살다 무병을 앓고 내림굿을 통해 신령을 모시게 된 무당이 강신무다.
이날 무대는 국립극장 '2021 여우락 페스티벌'의 하나였다. 이 강신무와 강영호 사진작가가 함께 꾸몄다. 예술적인 이 강신무의 황해도 대동굿 순간을, '춤추는 사진작가'로 알려진 강 작가가 "오케이!"를 외치며 포착하는 모습은 주술적 퍼포먼스가 됐다.
강 작가가 촬영한 이 강신무의 모습이 무대 뒤 스크린에 바로 옮겨졌다. 공연예술의 동적인 순간과 사진예술의 정적인 순간이 동시에 공존하며, 시간이 뒤틀리는 경험을 선사했다.
우리 근대의 선조들은 사진을 박는 순간,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었다. 공연의 타이틀 중 영혼을 빨아들인다는 뜻의 '흡혼(吸魂)'이 수긍가는 이유다. 이 강신무의 굿과 강 작가의 사진 촬영은 그렇게 닮았다.
역시 여우락 무대의 하나로 지난 9일~10일 하늘극장에서 펼쳐진 사이키델릭 샤머닉 펑크(Funk) 밴드 '추다혜 차지스'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을의 수호수' 당산나무를 세련되게 재현한 커다란 기둥 안에서 소리꾼인 보컬 추다혜가 무령을 들고 "여봐라~"라고 외치는 순간, 공연은 흥겨운 굿판이 됐다. 추다혜 차지스의 그루브가 넘치는 사운드에 네 무용수의 나풀거리는 몸짓이 더해져 굿의 축제성이 만개했다.
올해 '제1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알앤비&솔 노래 부문을 받은 추다혜차지스는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인 무가(巫歌)에 레게, 재즈, 힙합, 펑크(funk), 댄스, 록 등을 결합한 팀이다.
특히 이번 공연엔 추다혜에게 굿을 가르쳐준 스승인 이찬엽 만신이 게스트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9세에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된 강신무인 그는 추다혜에게 황해도굿, 평안도굿, 서울굿을 알려줬다.
굿, 조선팝 시대 힙합 음악…코로나 시대 힐링 음악
사실 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이수자 등을 중심으로 문화재 관련 행사에서 주로 선보여왔다. 지난 2017년 실제 무당인 임덕영이 극을 쓰고 연출까지 맡아 화제가 된 연극 '동이', 2018년 연희집단 더(The) 광대가 전통 굿을 소재로 한 공연 '굿모닝 광대굿' 등을 선보여왔지만 공연계에선 비교적 낯선 소재였다. 서울예술단 가무극(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 등에 일부 삽입되는 정도였다.
영화계에선 만신 김금화를 다룬 박찬경 감독의 다큐 드라마 영화 '만신'(2013)이 무속인의 인간적인 면을 톺아보며 무무당에 대한 편견을 일부 덜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연계에 굿과 무당 소재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작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공연이 취소되긴 했지만 '제11회 여우락'을 통해 온라인으로 공연한 '오소오소 돌아오소'는 동해안별신굿 보존회의 무녀와 화랭이(남자무당)의 굿판을 무대 위로 옮긴 작품이었다.
또 작년 9월 국립극단의 유료 온라인극장 개막작인 '불꽃놀이'(작 김민정·연출 남인우)도 황해도굿 등을 삽입,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어 위로하기 위한 굿인 '진혼굿' 같은 작품이었다.
국립정동극장이 올해 3월 선보인 '시나위, 몽(夢)'의 부제도 '후회하지 않는 생을 살기 위한 산 자들의 굿판'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심방(神房·무속용어로 무당을 의미)이 무속 음악에 뿌리를 둔 '시나위'를 통해 현대인을 위로한다는 내용이다. 동명 영화가 바탕으로 올해 상반기에 초연한 뮤지컬 '검은 사제들'에도 악귀를 쫓는 굿 장면이 삽입됐다.
공연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엔 굿과 무당이 등장하는 작품이 극히 드물었는데, 코로나19 이후에 유독 눈에 띄었다"면서 "전염병과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이 자연스레 투영된 것 같다"로 말했다. "모두가 지치고 힘든 시기에 굿의 기운을 담은 공연이 자연스레 힐링과 맞물린다"고 본 것이다.
이해경 강신무는 '접신과 흡혼'이 끝난 직후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어려운 시절, 걸음해 주신 모든분들의 신명이 저에게 와주셔서 신명이 솟구쳤다"면서 "모든 분들이 좋은 기운들을 서로 나눴으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썼다.
다원 아티스트 그룹 '이스트 허그(EASThug)'는 지난 5월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공연 '당클매다'에서 굿과 굿 퍼포먼스를 컴퓨터로 찍어낸 EDM음악과 발광다이오드(LED)로 해석하기도 했다.
젊은 음악가들이 굿과 무속 음악에 흥미를 느끼는 건, 그 자체에 예술적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추다혜차지스의 추다혜는 앞서 뉴시스에 "굿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다. 무당의 행위가 예술가의 행위 그 자체였고, 더할나위 없이 멋졌다"고 말했다.
이들 덕분에 굿과 무당도 점차 양지로 나오고 있다. 이찬엽 만신은 이번 추다혜차지스 국립극장 공연 커튼콜에서 "무당이 된 이후 평생 '좋은 소리' 한번 듣지 못했는데, 다혜 씨 덕분에 관객들 이런 무대에 서게 됐다"며 펑펑 눈물을 흘렸다. 이 만신은 추다혜가 처음 자신에게 굿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을 당시에 "뭐하러 이런 것을 배우냐"며 누차 거절했었다.
최근 대중문화계에서도 샤머니즘과 무당을 조명하는 작품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개봉한 태국 공포 영화 '랑종'은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제작한 작품으로, 현지 무속이 소재다. 오는 30일 공개되는 카카오TV 오리지널 드라마 '우수무당 가두심'은 배우 김새론이 맡은 소녀 무당 '가두심'이 주인공이다. 지난달 '평창영화제' 개막작인 안재훈 감독의 '무녀도'는 김동리 소설이 원작으로, 무속 샤머니즘이 주요 소재였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앞날을 기원해줄 수 있는 만큼, 공연계에선 굿과 무당을 소재로 한 공연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연계 관계자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굿이 최근 힙한 문화로 새삼 조명 받으면서 여러 창작진이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전염병과 암울한 시기에서 얼른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몇몇 작품들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