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징용소송 각하' 학자들도 비판…"역사 모르는 판결"

기사등록 2021/06/12 13:01:00

강제징용 피해자들, 日기업 상대 소송 '각하'

역사학자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어"

"불법여부 따지면 되지 왜 외교적 해석 하나"

"국제재판 패소시 국익 손상?…그럼 누가 가"

[서울=뉴시스]조성우 기자 =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임정규 씨의 아들 임철호(가운데) 씨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제철 주식회사와 닛산화학 등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각하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2021.06.07. xconfin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백동현 수습기자 = 식민지배 불법성은 국내법적 해석이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제한된다는 취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한 1심 법원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역사학자들도 이를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양호)는 강제징용 피해자 송모씨 등 85명이 일본제철 주식회사 등 일본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고, 이에 대한 후폭풍은 여전히 거센 상황이다.

'한강의 기적', '국가 위상 추락' 등 표현을 사용한 판결문 내용까지 알려지며 논란은 더 커지고 있는데, 판결문을 본 역사학자들도 재판부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라도 일본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권리 행사는 제한된다고 해석했다.

피해자들이 이 협정으로 받은 무상 3억달러가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협정에 포함되기엔 적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현재의 가치로 재단해선 안 된다"며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고 했다.

김태웅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재판부의 이런 논리에 대해 "청구권은 배상금이 아니고 독립축하자금 성격이었다. 성격이 전혀 다르다"라면서 "처음부터 성격을 잘못 규정하고 줬다. 그걸 활용한 것은 우리지, 자꾸 결과론적으로 푸는 건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강제동원공동행동 회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강제징용 소송 각하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6.10. dadazon@newsis.com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청구권협정은) 64, 65년에 알려져 있는 지식과 상식에 입각해 정리되고 합의한 것"이라면서 "당시 일본도 한국도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의 뒷면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위안부 문제, 그리고 강제동원의 개별적 희생자들이다. 그런 부분까지 명시적으로 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 "역사적 배경에 대해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의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것은 국내법적 해석이어서, 불법성을 이유로 청구권협정을 불이행할 수 없다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강제로 일 시키고 돈 안 주고 한 건, 그 자체가 불법"이라며 "보편적인 문제인데, 국내법이 우선 적용되는 게 맞다"고 했다. 이 같은 논리는 지난 10일 황병하 광주고법원장이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올린 댓글에도 담겼다.

재판부가 일본과의 관계 훼손 및 한미동맹 훼손, 국제재판 패소 시 국격·국익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해석을 담은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김 교수는 "법원의 월권"이라며 "불법 여부만 따지면 되는 데 매우 외교적 해석을 했다"고 일축했다. 안 교수도 "(국제재판) 패소가 치명적이라면 누가 국제사법재판소에 가겠느냐"면서 과도한 논리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들은 단순히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지우는 사법부 판단보다는,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일본의 배상을 묻는 우리나라 사법부 판단과 다른 판단이 나올 수는 있다고 본다"면서 "일본 기업한테 배상하라고 하면 현실적으로 받아낼 길이 없을 수 있다. 차라리 일본 정부에 피해 배상을 요구하기보다는 한국 정부가 책임을 지게 하는 등의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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