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득권 내려놓고 압록강 건너 고난의 길로 들어서"
만주로 가는 길 험난…감시 피해 일부 구간은 도보로
중국에 퍼진 조선인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에 항상 불안
석주 이상룡 선생은 '혁신유림'으로서 강한 의지 자리해
그런 뒤 추풍령에서 서울로 가는 경부선 열차와 서울에서 의주로 가는 경의선 열차를 타고 만주로 향했다.
28일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따르면 이들이 만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일부 구간은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중국 지역에 퍼져있는 조선인들에게 대한 흉흉한 소문에 항상 불안을 느껴야만 했다.
특히 신의주에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는 일은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혹독한 상황이었다. 풍토가 다른 지역에서 적응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백하 선생이 저술한 '서정록'에는 의주 백마역에 내려 신의주까지 걸어가는 역경이 기록돼 있다.
이후 신의주에서 압록강에 도착해 근처 객점에서 손자사위 황병일(黃炳日) 일행을 만났다. 하지만 방금령(防禁令)에 걸려 국경을 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하 선생은 음력 1월 8일에 압록강을 건넜다.
아들 김형식이 하루 전날 압록강을 건넌 후 상황을 보내왔고, 큰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어갔다.
백하 선생은 이 날의 감회를 시로 남겼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음력 1월 27일 압록강을 건넌다.
그가 저술한 '서사록'에는 '식사를 하고 나서 아우 덕초(德初·이봉희 아들)를 남겨두고 수레를 타고 압록강을 건넜다. 고국땅을 뒤돌아보니 돌아올 기약이 아득하다. 목석이 아닌 이상 어찌 감정이 없겠는가?'라고 기록하며 당시 심경을 알려준다.
석주 선생은 퇴계 학맥을 계승한 유학자 출신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정 순국의 길을 걸었던 보수유림과 달랐다.
만주망명을 통해 실력양성과 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져나갔던 그의 사상 밑바탕에는 '혁신유림'으로서 강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국학진흥원 관계자는 "그동안 누리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고난의 길로 들어섰던 경북 독립운동가들의 애환에서 나라 잃은 설움과 고단하게 전개된 독립투쟁의 숭고한 정신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이 걸어온 나라와 민족을 위한 험난한 길 위에서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옳은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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