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추념식…“어머니 유골이라도 찾았으면”

기사등록 2021/04/03 08:50:41

공식 행사 시작 전부터 행방불명인 묘역 찾은 유족들

“마음속 대화도 길게 못 나눠” 야속하기만 한 궂은 날씨

문재인 대통령‧유족 등 70여명 참석 최소 규모로 거행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73주년 제주 4·3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지에 희생 유족들의 참배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21.04.03. woo1223@newsis.com
[제주=뉴시스] 양영전 기자 = 3일 오전 7시 제73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4·3평화공원.

우산이 뒤집어질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고, 비도 세차게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공식 행사 시작 3시간 전부터 각자의 사연을 품고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보러온 유족들이 있었다.

비록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올해 추념식은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4·3수형자들이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는 등 의미가 남달랐다.

매년 추념식 때마다 어머니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동생을 만나러 온다는 고덕자(77·여)씨는 행방불명인 표석이 세워진 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연신 우산을 고쳐 썼다.

강한 바람에 우산은 무용지물이었고, 고 씨의 옷은 이미 다 젖어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제주시 삼양동에 거주하는 고씨는 매년 사람들이 많이 없는 이른 시간에 4·3평화공원을 찾아 조용히 가족과 마음속 대화를 나누고 돌아간다고 했다.

고 씨가 우리 나이로 4살이었던 1948년. 동생을 임신하고 있던 어머니는 고 씨가 보는 앞에서 끔찍한 총살을 당했다. 어린 나이여서인지 고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어머니의 시신은 찾지 못해 겨우 이곳에 이름만 달랑 쓰인 행불인 표석만 세웠다.

궂은 날씨 탓에 예년과 달리 술 한잔 올리지 못하고, 어머니의 표석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걸음을 옮기던 고씨는 “어머니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라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유골도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든다”고 착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제주=뉴시스]우장호 기자 = 제73주년 제주 4·3 추념일인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묘지에 유족들의 참배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21.04.03. woo1223@newsis.com
비슷한 시각 경인지역위원회 위령비 주변 표석 앞에 과일과 소주를 올리던 한 50대 부부는 이곳에 부부 내외의 가족 4명이 있다고 했다. 당시 난리 통에 남편은 큰아버지를 잃었고, 아내는 외할머니와 외삼촌 두 분을 떠나보냈다.

이 부부는 “현재 광주에 거주하지만, 매년 추념식에 맞춰 제주로 내려온다”며 “이번에 4·3수형인 무죄 판결 보도를 봤는데, 외삼촌 두 분도 수형소에 보내진 뒤 행방불명됐다. 재심이 이뤄지지 않은 수형인들도 하루빨리 명예 회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날 추념식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 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 진실화해위원장, 유족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0시부터 거행된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로 인해 추념식은 기존에 열리던 추념광장이 아닌 4·3평화교육센터 1층 다목적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추념식 주제는 ‘동백꽃이 활짝 피었습니다’라는 뜻의 제주어 '돔박꼿이 활짝 피엇수다'로,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이 지난 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주의 봄’이 한창 무르익었다는 의미에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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