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만에 자유인 된 정몽구 명예회장…앞으로의 역할은?

기사등록 2021/03/24 16:53:00 최종수정 2021/03/24 16:57:16
[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정몽구 명예회장이 1970년 현대차 사원으로 입사한 후 51년만에 그룹의 모든 직을 내려놓으며 사실상 '자유인'이 됐다.

현대모비스는 24일 서울 GS타워에서 주주총회를 조성환 사장, 배형근 재경부문장(부사장), 고영석 연구개발(R&D)기획운영실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임기가 1년 남았으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정 명예회장의 공석에 고 실장이 앉게 됐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해 2월 현대차 사내이사에서 물러났고, 3월에는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을 정의선 회장에게 넘겼다. 지난해 10월에는 그룹 회장직을 물려줬다. 24일 모비스 사내이사에서도 물러나며 그룹 내 계열사의 모든 직함을 내려놨다.

현대차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총수를 정의선 회장으로 변경해달라는 동일인 변경 요청을 해둔 상태다. 오는 5월 공정위가 현대차그룹의 총수로 정의선 회장을 지정하면 현대차그룹의 총수가 21년만에 바뀌게 된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을 물려준 후 정치·외교·통일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달리 건강을 챙기고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그룹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하며 조용한 은퇴 시기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해 대장게실염 진단을 받고, 수술을 위해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으며, 입원 4개월만인 지난해 11월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기력이 예전만은 못하지만 일상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상태"라며 "최근 자택에서 지인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는 등 외부인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정몽구 명예회장 일가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1길과 유엔빌리지2길 사이에 모여살고 있다. 첫째딸 정성이 이노션 고문, 둘째딸 정명이 현대카드·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부문장, 셋째딸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이사, 막내아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옆집, 앞집, 뒷집에 모여살고 있으며, 정의선 회장의 자택은 정몽구 명예회장 자택과 연결통로로 이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회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정몽구 명예회장을 찾아 문안인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아침 저녁으로 정몽구 명예회장을 찾아 문안인사를 하는 만큼 이 자리에서 그룹 대소사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정몽구 회장이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38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정몽구 명예회장은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과를 졸업하고, 1970년 2월 평사원으로 현대차에 입사했다. 1974년 현대자동차써비스를 설립하며 독자경영을 시작했고, 1977년에는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를 세웠다. 1982년 형 몽필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장자 역할을 해왔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을 맡은 후 대한민국 경제와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해 왔다. IMF외환위기 당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성공적으로 회생시켰고, 2010년에는 현대·기아자동차를 글로벌 톱 5업체로 성장시켰다.

정 회장의 저력은 시장을 쫓아 해외로 영역을 넓혀가며 진가를 나타냈다. 글로벌 주요 지역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며 전 세계 자동차 업체 중 유례가 없는 빠른 성장을 기록했다. 정몽구 회장의 명운을 건 도전은 현재 글로벌 자동차산업과 대한민국 경제의 지형을 바꾼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품질경영'으로 대표되는 경영철학이 대변하듯, 정몽구 회장은 최고의 품질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선의 가치라고 강조해 왔다. 전 세계에 균일한 고품질의 생산공장을 적기에 건설할 수 있는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을 확립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센터를 구축해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확충했다.

정몽구 회장은 부품 공급망 혁신을 매개로 협력업체의 글로벌 성장도 촉진했다. 현대차·기아는 해외공장을 건설하며 국내 부품업체 공동 진출을 추진했으며, 이는 부품업체들의 경쟁력 확대를 통해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선순환형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정몽구 회장의 동반성장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을 생산하는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건설, 국내 소재산업 도약을 이끌기도 했다.

정몽구 회장은 이같은 혁신 리더십과 경영철학을 인정받아 ▲2004년 '비즈니스 위크' 최고 경영자상 ▲2005년 '오토모티브뉴스' 자동차 부문 아시아 최고 CEO ▲2009년 미국 '코리아 소사이어티' 밴 플리트상 ▲201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세계 100대 최고 경영자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자동차산업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포드 창립자 헨리 포드,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벤츠 창립자 칼 벤츠, 혼다 창립자 소이치로 혼다, 토요타 창립자 키이치로 도요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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