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학전 30주년①]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 여기서 컸다

기사등록 2021/03/08 09:48:14

1991년 3월15일 개관...소극장 문화 대표

김광석 1000회 콘서트 등 역사적인 장소

[서울=뉴시스] 소극장 학전.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극단 학전(學田)은 한자로 '배울 학(學)'에 '밭 전(田)' 자를 쓴다. 서울대 문리대가 대학로에 있던 시절 그곳의 구내식당 이름에서 따왔다.

지난 1991년 3월15일 바탕골소극장과 샘터파랑새극장 샛길 골목에 문을 연 소극장 학전과 함께 출발한 극단 학전이 오는 15일 30주년을 맞는다.

1990년대부터 '소극장 문화'를 대표해온 곳이다. 대중음악 콘서트뿐만 아니라 자체 제작 뮤지컬을 비롯한 정극 중심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통예술, 클래식, 현대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수용했다. 특히 완성도를 갖춘 어린이·청소년극 '최후의 보루'로 통하는 곳이다.

학전을 이끄는 김민기(70) 대표는 이곳을 문을 열면서 이렇게 말했다. "못자리 농사를 짓는 곳"이라고. 규모가 큰 논농사가 아닌 모내기할 모를 기르는 조그만 논이라는 뜻이다. 이곳을 거친 이들이 큰 바닥에서 추수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1978년 노래굿 '공장의 불빛'을 완성한 뒤 김제, 전곡 등에서 소작 농사를 짓기도 했다. 

'지하철 1호선' 등 우리 뮤지컬의 분기점이 된 작품들을 제작한 김 대표의 예견은 정확했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통하는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를 비롯 방은진, 배해선, 방진의, 김무열, 김희원 등 스타들이 학전을 거쳤다.

장현성은 뉴시스에 "한국 문화계의 작지만 거대한 못자리. 학전이란 포도씨 한 알이 키워낸 내 인생의 단단한 포도나무 한 그루"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재즈보컬 나윤선도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다. 1994년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데뷔한 윤도현은 1995년 극단 학전 '개똥이'로 뮤지컬에 처음 출연했다. 또 학전은 가수 김광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 1000회 공연을 한 곳이다.

또 학전은 '학전 문예 강좌'를 통해 성인 대상 강의도 꾸준히 열었다. 유홍준, 이태호, 윤용이, 유재원 등 인문학 전문가·교수들이 이곳에서 강의를 했다.
[서울=뉴시스] 김민기 대표.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학전의 단단한 뿌리, 김민기
적어도 40대 이후 세대에게 김민기 대표는 아련함의 대상이다. 그는 1970~1980년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다. 어두운 시절에 그가 의도해서가 아닌, 세상의 운명에 따라 상징적인 노래가 된 '아침이슬' '상록수'로 기억되는 '포크계 대부'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았다'는 종심(從心·70세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을 막 넘긴 김 대표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재동국민학교와 경기중·고를 거쳤다. 경기중·고 시절 미술반 활동을 했고,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수업이 잘 맞지 않았던 그는 낙제를 하게 된다.

이후 1970년 김 대표에겐 족쇄와도 같은 '아침 이슬'을 내놓았다. 초창기엔 건전가요로 지정됐다. 널리 장려되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1972년 '10월 유신'이 있고 금지곡이 됐다. 불온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1년 전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곡이었다.

김 대표가 1971년 내놓은 독집 음반은 전량 압수됐다. 이후 김 대표는 방송금지는 물론 연행의 길을 걸었다. '친구' '아름다운 사람' '가을 편지' '봉우리' 등의 노래는 세상이 김 대표에게 빚진 노래다.

[서울=뉴시스] 김민기 대표.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특히 그가 1978년 발표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1970년대 노동자의 삶을 다룬 '노래극'으로 당시 노동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이 투사로 불리는 것에 넌더리를 낸다. 정작 싸워본 적이 없다며 몸을 낮춘다.

자신의 목소리를 음반으로 남기는 것도 마뜩치 않아했다. 하지만 이전 곡들을 모아 1993년 네장의 앨범으로 된 '김민기 전집'을 발매했다. 이 음반 계약의 선불금을 받아 학전을 개관했다. 그는 믹싱룸에 들어갈 때,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각종 어려움을 뚫고 연 학전은 공연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숨통이 됐다. 김 대표는 우리 문화예술계에 대한 공을 인정 받아 작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제30회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을 받았다.
1990년대 라이브 콘서트 성지
현재 대학로는 중소극장 연극·뮤지컬의 메카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대학로는 학전을 중심으로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성지로 통했다.

당시 대중음악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댄스 음악과 아이돌문화다. 대신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가수들은 점차 설 곳을 잃어갔다.

김 대표는 무대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학전이라는 공간을 제공했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당시 소극장에서는 드물게 음향, 조명 스태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후 대학로 일대에는 라이브 콘서트 전문 공연장이 대거 생겨났다. 홍대 라이브 공연장으로 확산됐다.

[서울=뉴시스] 2008년 안규철 제작으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에 건립된 '김광석 노래비'. 2020.11.23. (사진 = 김광석추모사업회 제공) photo@newsis.com
변진섭의 '희망사항'을 작사, 작곡한 노영심은 학전 개관과 함께 이곳에서 음악 콘서트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이 제목은 무대·객석의 구분이 없는 편안한 음악 공연이라는 뜻이다. 김 대표가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KBS 박해선 PD가 이 공연을 보고 이듬해 KBS에 정규 편성됐다. 이 프로그램은 99회까지 방송되며 인기를 누렸다. '이소라의 프러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으로 이어진 원조 음악토크쇼 격이다.

이밖에 안치환·박학기·권진원·장필순·들국화·동물원·강승원·여행스케치·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유리상자 등이 학전에서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학전 소극장 콘서트의 대표적인 인물은 가객 김광석이다. 올해 25주기를 맞은 김광석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을 했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매년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2008년 학전블루 소극장 앞에 조각가 안규철 제작으로 건립된 '김광석 노래비'가 세워졌다. 김 대표가 회장을 맡고 있는 김광석 추모 사업회는 매년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김광석 노래 부르기 2021'을 펼친다. 코로나19 여파로 김광석 25주기였던 지난 1월6일에 10회 대회가 무관중으로 열렸다.

김 대표는 김광석과 함께 대표적 요절한 뮤지션으로 통하는 유재하와도 인연이 있다. 고인의 49재를 맞아 열린 추모음악회의 연출을 맡았다. 김 대표는 이후 유재하음악장학회와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적극 참여했다. 1980~1990년대 우리 대중음악계의 중요한 변곡점에 김 대표가 항상 함께 했다.

1990년대 초반 자신의 제대로 된 첫 단독콘서트를 학전에서 열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는 장필순은 뉴시스에 "학전에서 치러지는 콘서트들은 일반 다른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공연들이었다"면서 "음악을 하시는 선배님이 대표다보니 음악 공연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애정을 갖고 계셨고, 물심양면으로 힘을 실어주셨다"고 돌아봤다.

지난 2019년에는 학전 30주년을 앞두고 학전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기 위한 첫 걸음으로 '어게인 학전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1994년 초연.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우리나라 현대사의 단면,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학전블루 소극장 외벽의 김광석 흉상 옆에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원작자인 폴커 루트비히와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흉상 동판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지하철 1호선'은 루트비히의 '리니에 1'(1호선)을 한국의 실정에 맞게 김 대표가 번안했다. 1991년에 문을 연 학전이 '지하철 1호선'을 처음 선보이는 것은 1994년이다. 당시 학전소극장(현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초연한 뒤, 1995년 5월 학전그린 소극장 무대로 옮겼다.

당시 소극장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10명이 넘는 출연진에 5인 밴드까지 가세해 매회 16명이 함께 했다.

옌볜 처녀가 중국에서 만난 한국 남자친구를 찾아온 후 다양한 군상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특히, 소외계층과 근현대사의 아픈 상처들을 건드리면서 대중의 공감을 샀다.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배경으로, 우리사회의 단면을 생생하게 기록한 풍속화로도 통한다. 다양한 인간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그린 이 뮤지컬에서 김 대표는 마당극을 떠올렸다.

[서울=뉴시스] 소극장 학전 그린 개관 당시 혜화역 풍경. 2021.03.08. (사진 = 극단 학전 제공) photo@newsis.com
김 대표는 원작의 본질을 꿰뚫어 한국에 맞게 변환시켰다.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는 격찬이 잇따랐다. 원작자가 "'지하철 1호선'은 독립된 창작물"이라며 1000회부터 저작권료도 면제했다.

일반 대중의 사연뿐만 아니라 출연 배우들의 인생 한 칸 한 칸이 담겨있었다. 2008년 11월 4000회로 끝날 때까지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나윤선, 조승우 등 배우 170여명이 거쳐갔다. 독일, 중국, 일본 등 해외 공연도 호평을 받았다.

1년에 2팀이 번갈아가며 공연한 '지하철 1호선'은 매년 자금 위기를 겪었던 학전에서 유일하게 수익이 나는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2008년 배우·스태프가 너무 소진된다면서 스스로 이 작품을 그만뒀다.

2011년에는 명성을 인정받아 무대의상 등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1996년 5월 문을 열었다가 2013년 3월 문을 닫은 학전그린 소극장의 대표 레퍼토리이기도 했다. 10년 만인 2018년과 2019년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특별 공연했다. 지금까지 71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모았다.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뮤지컬 '의형제' 그리고 뮤지컬 '모스키도'도 학전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YB의 보컬 윤도현에게도 학전은 고향과 같은 곳이다. 1994년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데뷔한 윤도현은 1995년 극단 학전 '개똥이'로 뮤지컬에 처음 출연했다. 윤도현은 김 대표를 만나 뮤지컬을 시작한 덕분에 이후 다른 제작사의 대형 뮤지컬 에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광화문 연가' 등에도 출연했다.

윤도현은 뉴시스에 "학전은 어린 윤도현에겐 꿈의 무대였고 지금의 윤도현에겐 엄마 뱃속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는 세상에서 학전이 30주년을 맞이한다는 건 저처럼 인연이 있는 사람에겐 정말 기쁘고 또 그 고집스러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꾸준하다'라는 게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아시는 분들은 아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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