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로]재론되는 나토式 核공유…동북아에 이식 가능할까

기사등록 2021/03/14 09:00:00

북한 비핵화 불발에 보수진영 중심 제안

현 정부에서도 핵공유에 인식 변화 조짐

북핵 능력 강화로 美핵우산에 의심 고조

핵공유 실현 가능성 높지 않다는 의견도

北 비핵화와 미중갈등이 실현 좌우할 듯

[브뤼셀=AP/뉴시스]2월 2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건물 바깥에 회원국 국기들이 휘날리고 있다. 2020.3.6.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 비핵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동북아시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식 핵공유를 구현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시 제시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방부를 이끈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과 박근혜 정부 때 외교부를 이끌었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포함된 국제 연구단체가 최근 동북아에 나토식 핵무기 공유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전직 장관이 참여한 미국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CCGA) 주관 '미국의 동맹국들과 핵무기 확산 문제에 관한 특별연구회'는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1967년 이래 나토 핵기획그룹(NPG)은 유럽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핵보장을 안심시키는 데 결정적 요인인 동시에 핵연습·기획 수행을 위한 중추기관이었음이 입증됐다"며 "미국이 아시아 핵심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려면 호주, 일본, 한국을 포함하는 유사한 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아가 이 단체는 나토식 핵공유 방식을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와 연계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시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나토식 핵공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양욱 한남대 겸임교수, 홍상화 연구원은 지난해 연말 '재래 전력을 통한 북핵 억제의 적절성'이라는 보고서에서 "전술핵 재반입이나 핵공유 중 하나의 조치는 실현돼야 재래 전력을 통한 북한 핵 억제 전략도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며 "이는 평화를 저해하는 조치가 아니라 평화의 실현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안전장치라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나토식 핵공유 주장이 정치권과 학계에서 분출하자 우리 정부 입장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직을 수행할 당시 전술핵 반입에 반대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정 장관은 나토식 핵공유를 포함한 전술핵 도입 여부를 묻는 국민의힘 김태호 의원 질의에 10초간 침묵했다.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2.18.  photo@newsis.com
눈을 감고 고민하던 정 장관은 "학자적 검토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러한 방안까지, 선택지까지 검토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거기에 대한 판단은 없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재차 답변을 요구하자 정 장관은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끝까지 나토식 핵공유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해온 현 정부가 이처럼 나토식 핵공유를 일축하지 못하는 것은 대북 비핵화 정책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2018년 초부터 북한과 수차례 정상회담을 하면서 외교적 협상을 통한 북한 핵무기 폐기를 추진해왔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교착상태에 빠진 사이 북한은 핵전력을 증강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과 올해 1월 제8차 당대회를 기념하는 열병식에서 대규모 재래식 전력과 함께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과시했다. 나아가 북한은 전술핵무기 개발을 공표함으로써 우리측에 대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북한이 이처럼 핵능력을 강화시키자 미국이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핵우산을 향한 의심이 번지고 있다. 핵우산이란 미국이 대규모 응징보복, 즉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제어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측을 공격할 경우 대규모 핵전력으로 보복을 가하겠다는 게 미국의 약속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모습을 나타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11축(양쪽 바퀴 22개)의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20.10.11.photo@newsis.com
문제는 북한이 ICBM과 SLBM을 확보해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미국 확장억제 태세에 균열이 생긴다는 점이다. 북한이 ICBM과 SLBM으로 한국과 미국 도시에 동시에 핵 공격을 가할 경우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이행하기 위해 자국민 대량살상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미국이 핵 위기 상황에서 자국민 보호를 우선시할 것이 자명하므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미국 핵우산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북한 ICBM·SLBM 개발로 미국의 확장억제에 빈틈이 생기자 우리 군은 재래식 무기를 통해 핵폭격을 막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다. 우리 군은 북한 핵공격이 임박할 경우 선제타격(킬 체인: Kill Chain)하고, 핵미사일이 발사되면 공중에서 요격(한국형 미사일방어, KAMD)하며, 재래식 전력으로 응징보복(한국형 대량응징 보복: KMPR)한다는 계획을 세워뒀지만 전문가들은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나토식 핵공유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따라 독자적인 전술핵무기 배치가 어려운 만큼 나토식으로 핵무기를 공유함으로써 북한과 핵균형(nuclear balance)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토식 핵공유란 과연 무엇일까. 미국은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과 핵무기를 공유하는 핵공유(nuclear sharing)를 실현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미국 B61-12 핵폭탄
냉전이 종식될 때 미국은 나토 지역에는 수백발의 핵무기를 남겨뒀다. 핵무기 소유권은 미국에 있지만 나토 동맹국들은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을 중심으로 유사시 타격계획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전시 핵무기 투하에는 미국과 동맹국의 공군기가 함께 투입된다. 유럽 국가들은 재래식 공격과 핵공격 모두를 수행할 수 있는 이중 목적 항공기를 지정해 미군과 함께 훈련한다.

나토에 보관된 핵무기는 B61-3~4 중력투하탄이다. 당초 영국과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등 7개국에 걸쳐 있던 저장고는 수년 단위로 변경돼왔다. 2015년 기준으로 영국과 그리스를 뺀 5개국 6개 미군기지에 B-61 탄두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토에 배치된 핵무기는 해당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탄약지원대대(Munitions Support Squadron・MUNSS)가 전적으로 관리·통제한다. 또 미 워싱턴이 직접 송신하는 긴급행동메시지(EmergencyAction Message: EAM)라는 발사코드가 입력돼야 핵폭탄이 활성화된다.

이 같은 나토식 핵공유 체제를 동북아에 적용할 경우 이는 한국과 미국, 일본, 나아가 호주나 필리핀 등을 포함시키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서울=뉴시스]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이 17일(현지시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군함에서 쏘아올린 요격미사일로 격추하는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험은 지난 16일 하와이 북동부 해상에서 발사한 모의 ICBM 타깃 미사일을 존 핀 해군전함에서 발사한 이지스 탄도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활용해 요격한 것이다. (사진=미국 미사일방어청 홈페이지) 2020.11.18.photo@newsis.com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나토 핵공유 체제의 현황과 동북아시아 도입에 관한 시론적 분석' 논문에서 "한국의 경우 어떤 성향의 정부가 등장하느냐에 따라서 정책방향이 달라질 수 있으나 보수정당이 핵공유를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이 결심할 경우 핵공유를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나토식 핵공유를 한반도 주변 수중에서 구현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잠수함 중에서 4척을 지정해 한미일 3국이 공동으로 협의해 운영하고 그의 운영비용도 함께 분담할 수 있다"며 "한미일 3국의 장교들이 유사시 공격해야 할 북한 표적들을 선정하고 유사시 3개국 정상에게 대안을 건의하거나 지시를 이행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토식 핵공유가 동북아에 그대로 이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당장 주도권을 쥔 미국 정부가 핵공유를 결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동북아 핵공유 체제가 실행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핵무장을 강화해 미국이 핵전쟁에 휘말릴 위험성이 커진다. 미국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핵전쟁까지 감수할 정도로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다.

미국 ICBM과 SLBM 기술이 그간 더 진화한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미국 ICBM과 SLBM은 정밀도가 높아 동북아 밖에서도 언제, 어느 곳에서든 전술핵무기 발사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나토 지역에서도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제공하는 투발 수단과 현지 전술핵무기 없이 적국에 전술핵을 쏠 수 있다.

【베이징=신화/뉴시스】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오른쪽)이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조 바이든 부통령과 만나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부통령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에 대해 미국 정부가 깊은 우려감을 갖고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시 주석은 ADIZ도 중국의 핵심 이익이라고 역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3.12.05
실제로 동북아에서 핵공유가 이뤄질 경우 동맹국들 간에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동북아 동맹국들의 의사에 반해 핵무기를 쏠 수도 있다. 냉전 초기 나토 회원국들 역시 유사시 미국이 유럽 의사와 상관없이 재래식 전쟁을 핵전쟁으로 비화시킬 수 있다는 '연루 공포(fear of involvement)'에 시달렸다.

아울러 우리 정부 의사와 달리 미국과 일본 등이 다수결로 북한과 핵전쟁을 벌이기로 했을 때 이를 저지할 수단이 없다. 나토의 경우 전쟁이 벌어질 경우 핵탄두를 사용할지 여부, 어떤 대상을 향해 언제 사용할지 등 논의는 나토에 위임돼있을 뿐 개별국가가 별도 발언권이나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즉 한국이 반대한다고 해도 일본이나 호주 등이 북한에 대한 핵폭격에 찬성해 핵무기가 발사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한반도 핵위기 때 한국이 배제되는 상황은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동맹과 핵공유: NATO 사례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시사점' 논문에서 "한국이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해 상당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되리라고 기대하거나 독자적 핵보유에 준하는 군사적 가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현실과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핵공유 비용 부담을 놓고 관련국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나토에서 유럽 국가들은 토지와 시설, 경계에 관한 일부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핵무기 관리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 이 같은 비용 분담은 미국에 상당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 미국은 B-61 탄두를 비롯한 전술핵 탄두를 유럽에서 유지하는 데 1년에 2억 달러(약 2250억원) 안팎 국방예산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핵공유 시 미국이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을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찬반양론이 갈리는 가운데 동북아 핵공유가 실현될지 여부는 향후 국제 정세에 달려있다. 북한 비핵화 진전 여부, 그리고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관건이다. 북한 핵능력이 더 고도화되고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 핵공유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북한이 비핵화에 협조하고 미중 갈등이 완화되면 굳이 핵공유를 감행할 필요가 없다.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정책개발실장은 '핵억제 전략의 시대적 변화 방향과 한반도 적용' 보고서에서 "어떤 모습의 확장억제체제로 변화하느냐는 급변하는 동북아·한반도 정세변화에 달려 있다"며 "북한 비핵화 여부, 미중경쟁 지속 여부, 미국·중국의 대북 확장억제 제공 여부 등이 변화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조 실장은 "비핵화에 실패하고 미중 대립이 격화될 경우 한미 확장억제는 핵공유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북한 비핵화에 성공하고 미중관계가 협력적일 경우 한미 확장억제는 재래식 기반 확장억제 방식으로 변하거나 동북아 비핵화지대 창설로 귀결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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