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서 3년만의 개인전 17일 개막
고운 세필로 본격 채색화...'싸우는 여자들'
"앞으로 100명 작업...힘 닿는데까지 그릴 것"
"여성의 독립운동 널리 알리는데 기여할 것"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올해로 만 82세. 3년만에 전시장에서 만난 화가 윤석남은 여전히 생생했다.
2018년 팔순에도 개인전을 열어 화제였는데, 이번엔 100세 시대를 증명하듯 더욱 '경이로운 화가'의 면모를 보였다.
"그림 말고는 할 게 없어서요."
윤석남은 지난 3년간 '싸우는 여자들'을 보며 행복했다.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그림만 그렸다.
"왜 목숨을 바쳐서까지 독립운동을 했을까?"
"나라면 목숨을 바쳤을까?"
이 의문과 질문을 화폭에 녹여 담아낸 그림은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역사를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으로 탄생했다.
"초상은 역사속 흉상을 참고했지만 인물들의 모습은 제 머릿속 상상으로 그린 겁니다."
17일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 선보인 작품은 '여성주의 작가' 윤석남의 '결정판'이다. 본궤도에 오른 채색 여성초상화를 보여준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초상 연작과 대형 설치 작업을 함께 걸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14인(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은 일제강점기 여성운동과 구국을 위한 항일운동에 투신한 여성들이다.
학고재 본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박자혜(1895~1943)의 초상을 만난다. 독립운동가 신채호(1880~1936)의 아내다. 붉은 유골함을 가슴에 안은 초상은 괴팍하게 일그러진 얼굴이다.
윤석남은 "남편의 죽음에 슬픔과 분노가 차오른 표정을 담은 것"이라며 붉은 유골함은 피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박자혜는 1919년 3·1운동 당시 간호사로서 간호사들을 모아 ‘간우회’를 조직하였고, 만세 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으나 대중에게는 그 이름이 아직 낯설다.
전시장 중앙 벽면은 피빛 붉은 저고리를 입고 한쪽 팔을 높이 뻗은 김마리아(1892~1944)의 초상. 기개가 충만하다.
"이번 초상 작품중 가장 가슴에 와닿은 인물은 김마리아에요. 조선인으로서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두려움 없이 행동한 그 정신에 존경심을 담았어요."
김마리아는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널리 신망 받은 인물이다. 2·8독립선언에 참여한 뒤 선언문을 기모노 속에 숨겨 국내로 들여와서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적극 가담했다. 이 일로 체포돼 심한 고문을 받고 귀와 코에 고름이 차는 고질병을 얻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려나자마자 활동을 재개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을 맡아 임시정부에 자금을 전달하고 조직을 확대하던 중, 동지의 배신으로 검거돼 또 한 번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남자현은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인물이다. 윤석남이 그린 초상은 4번째 손가락이 잘린채 붕대를 감은 모습이지만 결연한 모습이다.
남자현은 1919년 3·1운동 직후 아들과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군 단체 서로군정서에 들어갔다. 만주 일대에서 교육운동에 힘쓰는 한편, 사이토 총독 암살을 기도하는 등 무력투쟁에도 앞장섰다. 또한 독립 의지를 고취하고 운동가들의 분열을 막기 위해 두 번이나 혈서를 썼으며, 1932년 국제연맹조사단이 하얼빈에 왔을 때는 왼손 무명지를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 조선은 독립을 원한다)’이라는 혈서를 써서 자른 손가락 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보냈다. 고문과 단식투쟁으로 건강이 악화돼 6개월여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출감 직후인 1933년 8월 22일 숨을 거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윤석남의 인물 채색화는 고운 세필로, 강하게 그려낸 게 특징이다.
원래 아크릴로 서양화 재료로 작업하던 그는 10년전 채색화로 돌아섰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윤두서의 자화상을 본 후였다. "그 초상화를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나는 바보같이 살았구나"를 깨달으며 서양화 재료를 버렸다. 그렇게 채색화를 배우고 작업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왜 행복한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행복해요."
정면을 응시하는 당당한 눈빛에 매료되어, 여성의 시선을 드러내는 채색화를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
2018년 학고재에서 선보인 '윤석남' 전시는 2015년경부터 그려온 채색화 연작을 최초로 발표한 자리였다. 전시 제목에 걸맞게 자화상을 다수 출품했다.
1982년도에 연 첫 전시부터 줄곧 어머니와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였지만 자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처음이었다. “자랑스러운 나의 엄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것이 많았으나 자신을 드러내기가 못내 망설여졌다는 그가 고운 세필을 쥐고, 강렬한 필치로 스스로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주위의 벗들을 그린 초상 연작을 OCI미술관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수년간 개인의 삶을 돌아본 윤석남이 이제 역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복원한다.
채색화를 그리며 과거의 복식 등을 참고하고자 한국의 초상화를 모은 책을 구입했다. 방대한 분량 속 여성의 초상은 가장 뒤편에 이름도 없이 단 두 점 실려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려진 그림이었다. “왜인지 울화가 치밀었다.” 어려운 시대, 나라를 위해 싸운 여성들의 삶을 조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기록에 근거하여 그려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자료가 많지 않아 난항을 겪기도 했다.
윤석남은 역사가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화폭에 기록하기로 했다. 남아 있는 사진 자료를 참고하여 얼굴을 묘사하고, 각 인물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배경과 몸짓을 구상해 그려 넣었다.
윤석남의 초상에서 인물의 손은 크고 거칠게 표현된다. 손은 살아온 삶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그 사람의 전체를 상징한다. 붓을 꼭 쥐고 초상을 그리는 화가도 그 투박한 '손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 서문을 쓴 김현주 추계예대 교수는 "윤석남은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얼굴과 독립운동의 방법을 알려주는 상황의 묘사나 단서를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며 "얼굴 중 특히 눈을 통해 내면의 기운이 전달된다고 생각해 항상 생생하고 강렬한 눈의 묘사를 중요시 여겨왔다. 얼굴 다음으로 손은 실행 수단으로서 크고 중요하게 묘사됐다"고 소개했다.
윤석남은 제일 먼저 작은 사이즈로 얼굴 드로잉을 하고 인물의 특성을 파악한 뒤에야 원본 크기의 초본을 만들어 한지에 옮기고 채색으로 마무리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얼굴 드로잉과 소형 초상이 대형 초상화와 나란히 전시되어 초상화의 제작 과정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여성들. 그 여성들을 다시 불러낸 윤석남은 "앞으로도 조명할 인물이 많다"며 "역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그림으로 복원해내는 작업을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100인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을 그리는 것을 장기 목표로 삼았다. 윤석남은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힘닿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각오다.
학고재 우찬규 대표는 "윤석남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채색 초상화'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며 "후대에도 남겨져 전해질수 있는 작품들로 의미가 있어 독립기념관 등 미술관에서 더욱 주목해 관람해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김현주 추계예대 교수도 "윤석남의 초상화는 여성의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할 것"이라며 "초상화의 수가 많을수록 그 효과는 커지리라 생각한다. 그 초상화를 통해 윤석남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민족과 국가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립’이 무엇인지 진중하게 묻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는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개막한다. 학고재 본관에서는 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 등 14인을 그린 채색화와 연필 드로잉을 선보인다. 그림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핵심적인 어록과 설명을 함께 붙여 이해를 높이고 있다.
본관 안쪽 방을 가득 채운 나무로 만든 설치 작품 '붉은 방'(2021)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4월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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