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1심 승소…"주권면제 해당안돼"(종합2보)

기사등록 2021/01/08 13:00:48

국내 첫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

1심 "국가면제 인정 어려워…재판권 행사"

국제재판관할권·손해배상 책임 모두 인정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지난해 8월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뒤로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0.08.14. dadazon@newsis.com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1심 법원이 승소판결을 내렸다. 정식 재판에 회부된 지 약 5년 만에 나온 국내 첫 위안부 관련 판결이다.

법원은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이 이 사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외국 국가를 피고로 하는 소송에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국제 관습법인 주권면제가 이 사건에서도 적용돼 우리 법원이 피고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는지가 문제됐다"며 "이 사건 행위는 사법적(私法的) 행위가 아니라 주권적 행위"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외국 국가가 '사인(私人)'의 지위에서 행한 행위는 주권면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외국 국가의 주권적 행위이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은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피고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는 ▲우리 헌법 및 세계인권선언에 따른 '재판받을 권리' ▲주권면제의 실체법상 권리 및 이론의 가변성 ▲비엔나협약에 따른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의 가치우월성 ▲협상력, 정치적 권력이 없는 개인은 소송 외 손해배상의 방법이 없다는 한계 ▲주권면제는 절대규범을 위반한 국가가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목적으로 형성된 이론이 아닌 점 등이 제시됐다.

재판부는 이어 "불법행위의 일부가 한반도 내에서 이뤄졌고,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 중"이라며 "대한민국은 이 사건 당사자들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으므로 대한민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사건 피고의 행위는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들이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사정을 볼 때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각 1억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원고 측) 청구를 모두 인용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에서 피고가 직접 주장하지는 않지만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보면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가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김강원 변호사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01.08. kkssmm99@newsis.com
판결이 끝난 뒤 위안부 측 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는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그간 당했던 것에 대한 최초의 판결이지 않냐"고 소감을 밝혔다.

배춘희 할머니 등은 2013년 8월 일제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를 차출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각 위자료 1억원씩을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결국 이 사건은 2016년 1월28일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고 지난해 4월 소송제기 약 4년 만에 첫 재판이 열렸다. 법원은 공시송달을 통해 직권으로 일본 정부에 소장을 전달했다.

이는 우리나라 법원에서 진행 중인 일본정부 상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중 가장 먼저 나오는 판결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대리하고 있는 또 다른 위안부 소송은 오는 13일 1심 선고가 내려진다.

앞서 이 사건 원고 측 대리인은 지난해 9월 같은 법원에서 열리고 있는 민변 측 사건을 언급하며 "선입선출이라는 해결적 원리처럼 제가 먼저 사건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먼저 마무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빠른 종결을 요청한 바 있다.

한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이 사건을 법원행정처가 개입해 각종 시나리오별 판단을 내려 보고서까지 작성한 사건 중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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