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
1심 "국가면제 인정 어려워…재판권 행사"
국제재판관할권·손해배상 책임 모두 인정
법원은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이 이 사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외국 국가를 피고로 하는 소송에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국제 관습법인 주권면제가 이 사건에서도 적용돼 우리 법원이 피고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는지가 문제됐다"며 "이 사건 행위는 사법적(私法的) 행위가 아니라 주권적 행위"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외국 국가가 '사인(私人)'의 지위에서 행한 행위는 주권면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외국 국가의 주권적 행위이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은 일본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비록 이 사건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할지라도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피고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는 ▲우리 헌법 및 세계인권선언에 따른 '재판받을 권리' ▲주권면제의 실체법상 권리 및 이론의 가변성 ▲비엔나협약에 따른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의 가치우월성 ▲협상력, 정치적 권력이 없는 개인은 소송 외 손해배상의 방법이 없다는 한계 ▲주권면제는 절대규범을 위반한 국가가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목적으로 형성된 이론이 아닌 점 등이 제시됐다.
재판부는 이어 "불법행위의 일부가 한반도 내에서 이뤄졌고, 원고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 중"이라며 "대한민국은 이 사건 당사자들 및 분쟁이 된 사안과 실질적 관련성이 있으므로 대한민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사건 피고의 행위는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원고들은 상상하기 힘든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들이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사정을 볼 때 위자료는 원고들이 청구한 각 1억원 이상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원고 측) 청구를 모두 인용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 사건에서 피고가 직접 주장하지는 않지만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보면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배춘희 할머니 등은 2013년 8월 일제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를 차출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각 위자료 1억원씩을 청구하는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결국 이 사건은 2016년 1월28일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고 지난해 4월 소송제기 약 4년 만에 첫 재판이 열렸다. 법원은 공시송달을 통해 직권으로 일본 정부에 소장을 전달했다.
이는 우리나라 법원에서 진행 중인 일본정부 상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중 가장 먼저 나오는 판결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대리하고 있는 또 다른 위안부 소송은 오는 13일 1심 선고가 내려진다.
앞서 이 사건 원고 측 대리인은 지난해 9월 같은 법원에서 열리고 있는 민변 측 사건을 언급하며 "선입선출이라는 해결적 원리처럼 제가 먼저 사건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먼저 마무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빠른 종결을 요청한 바 있다.
한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이 사건을 법원행정처가 개입해 각종 시나리오별 판단을 내려 보고서까지 작성한 사건 중 하나로 지목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gahye_k@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