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韓선박 나포 대체 왜?…"대미 압박용" "내부 선거용"

기사등록 2021/01/05 18:12:27 최종수정 2021/01/05 18:43:53

이란, '해양 오염' 명분 내세워…"기술적 측면" 주장

핵합의(JCPOA) 복원 협상서 대미 협상력 제고 포석

한국에 동결된 원화 자금의 해제 압박 위한 차원도

이란 강경파, 6월 대선 앞두고 존재감·영향력 과시

"최근 한국과 이란 간 분위기 나쁘지 않아…美 겨냥"

[부산=뉴시스] 아랍에미리트(UAE)를 향하던 한국 유조선 '한국케미호'(9797t)가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사진은 이란 혁명수비대 함정이 한국케미호에 접근하는 모습이 촬영된 CCTV영상. (사진=타이쿤쉽핑 제공). 2021.01.0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이란 정례군인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의 화학물질 운반선을 나포한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란은 해양 오염 조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이란 핵합의(JCPOA)' 복원을 위한 협상을 재촉하며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는데 우선 무게가 실린다.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동결돼 있는 이란의 원화 자금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이란 내부적으로 6월 대선을 앞두고 강경파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5일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호르무즈 해협의 오만 인근 해역에서 항해 중이던 한국 국적의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가 이란 당국의 조사 요청에 따라 이란 해역으로 이동했으며, 현재 이란 반다르아바스 항에 입항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박에는 한국인 5명 등 20명이 승선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외교부와 주이란대사관은 우리 선박 억류 관련 상세 상황 파악과 함께 선원 안전을 확인하고, 이란에 선박의 조기 억류 해제를 요청했다. 군은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 인근으로 이동시켰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선박 나포 이유에 대해 반복적임 환경 오염과 공해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관영 IRNA통신 등에 따르면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건의 원인은 기술적인 것으로 "한국 유조선의 환경 규제 위반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응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후 외교부 청사를 찾은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 역시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과 만나 "환경 오염 등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측은 우리 선박이 해양오염 활동을 여러 번 한 걸로 듣고, 고소가 들어와서 사법 절차를 개시한 사건이라는 입장"이라며 "양국 외교부간에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양측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초치 되었던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가 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를 나서고 있다. 주한이란대사는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정예군인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 유조선 'MT-한국케미호' 관련해 초치되었다. 2021.01.05. kmx1105@newsis.com
하지만 이란 정부가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란 측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한국케미호의 선사인 DM십핑 측은 환경 오염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한국 선박 나포가 한국에 동결된 원화 자금의 동결 해제를 압박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카타르 국영 언론 알자지라는 동결된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간 이란 정부는 한국 정부에 70억 달러 규모 원유 수출대금 동결 해제를 요구해왔고,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경고해 왔다.

현재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의 이란중앙은행 명의 원화 계좌에는 70억 달러(7조6000억원)가 동결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 미국 정부의 승인 아래 원화 결제 계좌로 교역을 진행해 왔다. 예컨대 한국 정유·석유 회사가 이란산 원유 및 초경질유를 수입한 후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의 원화 계좌에 대금을 입금하면 이란에 수출한 한국 기업은 이 계좌에서 수출 대금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거래 계좌도 함께 동결됐다. 정부는 미국, 이란과 협의를 거쳐 지난 5월 이 계좌를 통해 의약품, 의료기기 등 인도적 품목 일부를 이란에 수출하는 절차를 재개했다. 지난 5월 50만 달러 상당의 유전병 치료제 수출을 시작으로 의약품, 의료기기 위주의 교역 품목을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과 이란 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정부는 이란과 8차례 인도적 교역 확대를 위한 워킹그룹 회의를 개최했고, 20여건의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에 합의한 것은 물론 백신 확보 노력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과 인도적 교역 확대를 위해 노력해 성과가 있었고 이란 측도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다만 이란 강경 보수파 쪽에서는 한국에 있는 수조원대의 자금 규모에 비해 (인도적 교역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4일(현지시간)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 (그래픽=안지혜 기자)  hokma@newsis.com
이로 인해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대미 압박용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실고 있다. 앞서 바이든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비판하면서 당선 시 합의에 복귀하겠다고 공약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최근 한국과 이란 관계가 나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한국보다는 미국과의 핵 합의 재협상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며 "핵 과학자 암살 이후 우라늄 농축 한도를 20%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하는 등 최근 강경하고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행보의 연장선"이라고 짚었다.

이란은 공교롭게도 선박을 나포한 당일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서 순도 20% 우라늄 농축 작업을 개시한다고 선언했다. 우라늄 농축 농도 20%는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90%보다 낮다. 하지만 지난 2015년 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과 체결한 이란 핵합의에서 제한한 3.67%을 웃도는 수치로 명백한 핵합의 파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이란이 재협상에 대비해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강경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전날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핵 강탈을 강화하려는 명백한 시도로 계속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 선박 나포에 대해서도 "이란 정권은 국제사회가 제재 압박을 완화하도록 하기 위한 명백한 시도의 일환으로 계속해서 걸프해에서의 항행의 권리와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이란이 우라늄 농축 농도 상향 등 공세적 행보에 나설 경우 오히려 바이든 당선자의 대이란 외교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란 대내적인 메시지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란이 핵합의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혁명수비대가 주도하는 역내 공세적 도발 행위 금지가 의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감안해 보수 강경파들이 6월 대선에서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강한 주도권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 즉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성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취재진에게 질문 받고 있다. 2021.01.05. (공동취재사진) photo@newsis.com
한편 외교부는 이란의 선박 나포 의도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외교부는 빠르면 이번주 실무대표단을 이란 현지에 급파해 이란 측과 양자 교섭에 나설 예정이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 역시 오는 10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이란을 방문해 인도적 교역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이란의 선박 억류 동기가 원화 자금 동결에 대한 불만이라는 해석에 대해 "지금 그런 것을 섣불리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사실 관계를 먼저 파악하고, 우리 선원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조속히 나포 상태가 풀릴 수 있도록 외교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측에 선박 억류와 원화 자금 문제를 연계해서 협상 또는 합의하자는 의도가 있냐고 물었는데 절대 아니라는 일차적 대답이 있었다"며 "다른 동향과 배경을 모니터링하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억류 건을 해결해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g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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