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주52시간제 성패…'근로자대표제' 뇌관될 듯

기사등록 2020/12/13 10:00:00

현행법상 규정 미비…건강권 침해 우려

노사 합의 내놨지만 입법 시일 걸릴 듯

[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등 노동관계법 개정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0.12.10. kmx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를 앞두고 '저녁 있는 삶'이란 현 정부 국정과제 성패는 결국 '근로자대표제'가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공방으로 막혔던 탄력근로제 입법이 이뤄지면서 그 도입 과정에 근로자대표의 권한이 커진 만큼 그간 모호했던 규정을 정비해 사업장에서 악용될 소지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9일 정기국회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단위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고 6개월 이내인 탄력근로제를 신설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행 최대 단위기간은 3개월이었는데 주 52시간 도입에 앞서 납기 등을 이유로 이 기간을 최대 6개월에서 1년까지 늘려야 한다는 재계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개정안은 노사정 합의안에 근간을 둔다. 지난해 2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면 주 최대 64시간 근무(주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추가 연장근로 12시간)가 가능해진다. 개정안은 또 당초 고려되지 않던 연구개발(R&D) 업무에 한해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리면서 사실상 일 근로시간에 제한을 없앴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근로자대표제다. 근로자대표는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 시행에 있어 서면합의 주체로서 권한을 행사한다.

탄력근로제 뿐만 아니라 근로자대표는 근로기준법, 퇴직급여법, 파견법, 산업안전법 등 고용노동 관련 법률 전반에서 협의주체로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관련 법률들은 근로자대표를 노사 관계에서 의견 청취 또는 협의 주체로 명시하고 있다.

근로자대표가 사용자와 협의를 통해 노동자의 건강권과 임금을 '예외'로 만들 권한이 큰 데도 현행 법상 근로자대표와 관련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줄곧 문제로 제기돼왔다. 선출 절차와 방법, 근로자 대표의 대표권 행사방법도 분명하지 않고 제도가 지침으로 운영되고 있어 위반시 제재를 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업주가 임의로 근로자대표를 뽑아 악용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 실제 지난 6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는 이마트가 간선제로 뽑은 근로자대표와 협의해 대체휴일을 하기로 협의를 진행, 휴일근무수당 60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노사 관계의 9할이 사각지대인 상황에서 주 52시간제가 도입되고 그 과정에서 근로자대표제의 역할이 대두될 것이란 점이다. 자칫하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근로단축이란 제도의 취지가 형해화할 것이란 우려다.

국내 노조조직률은 11.8% 수준에 불과하고,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 적용되는 50~299인 사업장의 사정은 처참한 상황이다. 고용부 2018년 사업장 규모별 노조 조직률 현황에 따르면 300명 이상은 50.6%, 100~299명(10.8%), 30~99명(2.2%)이다. 30명 미만은 0.1%에 불과하다.

절대 다수가 미노조 사업장이고 여기에서 근로자대표의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정비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50~299인 사업장에 이어 내년 7월부터 5~49인 사업장도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는 만큼 이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사정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합의를 도출한 상태다. 지난 10월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근로자대표의 선출, 임기, 지위와 활동 등 규정 등을 담은 합의안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 역시 입법에 의지를 갖고 해당 내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사노위 안(案)이 노사간 쟁점이 되는 내용을 배제하고 원론적 수준을 담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사노위안은 근로자대표의 선출과 관련해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이에 대해 근로자대표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직종별 차별 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가령 생산직이 과반을 차지하는 사업장에서 선출된 근로자대표가 사무직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현행 체제와 가장 큰 차이인 임기제(3년)를 두고도 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합의안은 과반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들이 근로자대표의 지위를 갖도록 하고 있는데 드문 경우지만 임기 내 과반수 노조가 생길 경우 문제화될 수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경사노위안을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려면 여러가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섣부른 입법은 오히려 상황을 더 꼬이게 할 가능성도 있다"며 "근로자대표제를 잘 운영하기 위해선 여러 쟁점이 있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0일 근로기준법 개정안 통과 이후 브리핑을 열고 "10월16일 경사노위에서 근로자대표제 대한 합의가 있었는데 궁극적으로 입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사노위 합의는 당시 근로자대표에 대한 원칙적 내용의 합의를 담고 있어 입법화를 위해선 세부 쟁점에 대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입법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전까지 근로자대표에 대한 해석 지침을 빠른 시간에 합의 정신을 반영해 보완토록 하겠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