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전셋값 76주 연속 상승…매물 품귀 지속
서울 도심→외곽→경기도로…서울 거주자 '탈서울화'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치솟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요."
2년 전 회사와 멀지 않은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아파트(전용면적 84㎡)에 전세로 입주한 직장인 강모(38)씨는 주말마다 경기도 안양과 광명 일대 소형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다. 전세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3월 집주인에게 집을 내주고, 경기도로 이사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힌 뒤 인근 아파트 단지들을 돌며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매물 자체가 없고, 전셋값도 2억~3억원이나 올라 부담스럽다"며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이럴 바에 경기도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상 최악의 전세대란에 지친 서울 거주자들이 서울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탈(脫)서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이 사실상 자취를 감추고, 전셋값은 76주 연속 상승하는 등 주거불안이 가중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전세난민이 늘면서 수도권 일부 지역의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서울 전세난민들이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고, 교통이 편리한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로 눈을 돌리면서 수도권 지역의 집값과 전셋값을 밀어 올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지역의 집값과 전세값이 급등하면서 해당 지역에 살던 주민들이 다른 외곽지역으로 밀려나는 '도미노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서울 전세난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탈서울을 선택하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한 달간 서울에서 1만명 이상이 타지역으로 전출한 반면, 경기도는 1만명 이상 순유입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0월 서울 인구는 1만312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5060명) 대비 두 배 넘게 줄었다. 지난해 평균치(4638명)와 비교해도 올해 유독 인구 감소가 두드러진다. 이와 달리 경기도 인구 수는 1만985명 늘어났다. 서울에서 밀려난 수요자 상당수가 수도권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76주째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의 12월 첫째주(7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4% 올랐다. 지난주보다 상승 폭이 0.01%p 줄었지만, 여전히 상승세다.
서초·송파구(0.21%)와 용산구(0.19%)는 정주 여건 양호한 단지 위주로, 은평·영등포·관악구(0.13%) 등도 직주근접이 양호하거나 역세권인 단지 위주로 올랐다. 또 동작구(0.19%)는 사당·신대방동 역세권 위주로, 영등포구(0.13%)는 영등포동 역세권 위주로, 관악구(0.13%)는 신림·봉천동 대단지 위주로 상승했다.
경기(0.27%)에서는 고양 덕양구(0.57%)는 행신화정동 구축과 도내동 신축 위주로, 성남 분당구(0.44%)는 구미·이매·정자동 등 구축 단지와 삼평동 위주로, 남양주시(0.43%)는 진접읍 등 저가 단지와 3기신도시(왕숙지구) 기대감 있는 다산동 위주로 상승했다. 다만, 과천시(-0.01%)는 1300세대에 이르는 신규 입주물량 등으로 등으로 하락했다.
전세난이 집값을 밀어 올리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전국 대부분의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전국과 수도권의 아파트값 상승폭은 더욱 커졌다. 전국의 아파트값이 지난주 대비 0.27% 오르며 3주 만에 주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한국부동산원이 2012년 5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또 서울만 0.03%로 지난주와 동일한 상승폭을 기록했고, 수도권(0.16%→0.18%)과 지방(0.31%→0.35%)의 상승폭을 키웠다. 지방의 경우 5대광역시(0.44%→0.50%)가 특히 상승폭이 높았고, 울산(0.76%)·부산(0.58%) 등이 평균치를 웃돌았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개발 기대감이나 교통여건 개선 여지가 있는 지역, 상대적으로 중저가 주택이 있는 지역에서 매매가가 상승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택시장에서는 서울에서 시작된 전세대란이 계속될 경우 수도권 비규제지역 내 중저가 아파트를 매매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의 전셋값 급등으로 상당수 전세 수요가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수도권 비규제지역 내 아파트 매매 수요로 전환됐다는 분석이다.
또 정부가 사상 최악의 전세대란을 타개하기 위해 오는 2022년까지 전국에 11만40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11·19 전세 대책을 발표했지만, 수요자들이 원하는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 중심의 공급 대책으로 실효성 떨어지면서 서울 거주자들이 수도권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전셋값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변수인 신규 공급 물량도 갈수록 줄어든다. 내년부터는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이 대폭 줄면서 전세난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13만6336가구로, 올해 입주 물량 18만7991가구보다 5만여 가구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지역의 집값과 전셋값 동반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로 서울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서울을 포기하고 수도권으로 향하는 주택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 전체에 걸쳐 전세 매물이 부족으로 인한 집값과 전셋값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서울 전셋값이 치솟으면서 서울 전셋값 수준으로 매입이 가능한 수도권으로 주택 수요가 몰리며 수도권의 집값과 전셋값이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서울은 집값과 전셋값이 급등한 반면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3기 신도시 공급 등으로 당분간 탈서울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sky032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