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조일까 말까…'전세대란'에 금융당국 '딜레마'

기사등록 2020/11/09 21:32:58 최종수정 2020/11/09 21:34:00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전세물량 품귀가 이어지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폭이 5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8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매물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2020.11.08.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최악의 '전세대란'에 금융당국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늘어나는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출규제를 꺼내들어야 한다는 전방위적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전국적인 전세난까지 겹치면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은 까닭이다.

당초 금융위원회는 신용대출이 급격하게 증가할 경우 '핀셋' 규제를 하겠단 입장이었지만, 불과 두 달여 만에 시장 상황이 급변하면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부동산 매매 시장을 생각하면 대출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하나 전세 시장을 생각하면 조일 수 없는, 그야말로 '딜레마'에 놓인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전면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전세 대출이 최근 굉장히 많이 늘었다"며 "금리가 낮아지면서 돈을 많이 빌려 더 좋은 곳으로 가려는 수요도 있고, 임대인 입장에서는 많이 받으려는 부분도 있어서 상승요인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전체적인 DSR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NH농협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10월 말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82조1450억원으로 9월 말(80조892억원) 대비 2조558억원 늘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전세대출은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규제에 들어갈 경우 서민들의 주거안정성이 흔들릴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전세대출을 조일 경우 높아진 전세 가격을 견디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야 하거나, 월세로 전환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전세난으로 세입자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전세대출까지 조일 수는 없지 않느냐"며 "관계부처간 협의는 꾸준히 하고 있지만 이번 전세 대책에 금융 부문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DSR에 전세대출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번 대책에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더 큰 고민은 신용대출이다.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급증세가 다소 진정됐긴 했지만, 10월 들어 다시 증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10월 말 신용대출 잔액은 128조8431억원으로 한달 새 2조4563억원 증가했다. 폭증세를 보였던 8월(4조704억원)과 비교해서는 다소 안정됐지만, 9월 증가폭(2조1121조) 보다는 다시 커졌다.

이는 최근 전셋집 공급이 수요보다 턱없이 부족한 탓에 전세가격이 급등하자, 신용대출로 자금을 충당하려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한 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날인 9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가계부채 규모가 늘어난 것에 경계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응 중"이라며 "가계 신용대출의 경우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신용대출 증가세가 추세적으로 지속될 경우 향후 가계대출 관리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증가 규모가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따라서 증가 추세를 좀 지켜본 뒤 필요하다면 '핀셋 규제' 정도가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서는 DSR 적용 기준금액을 낮추거나, 적용 지역을 넓히는 방안이 거론된다. DSR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유가증권담보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현재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9억원 이상 초과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을 받는 차주는 개별적으로 은행권 40%, 비은행권 60%의 DSR규제를 적용받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애초에 대출규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신용대출 자금이 매매시장으로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자는 취지였다"며 "그런데 불과 두어달 만에 매매 시장은 비교적 안정되고 있는 반면, 전세시장이 급등하는 등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대출도 결국 전세시장과 연관되기 때문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며 "타깃팅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전세금을 충당하려는 직장인 등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곧 나올텐데 추이를 살펴보고 대책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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