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천역 인근 어천1리 이장 "5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난다"
"인천에서 생선 아주머니 오면 맛난 반찬 먹는 날"
2조74억원 들여 수원~한양대 52.8㎞ 전 구간 12일 개통
[수원=뉴시스]박상욱 기자 = "새로 생긴 어천역을 보니 지난 5월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네요", "생선 파는 아주머니가 마을에 오는 날은 맛있는 반찬을 먹는 날이었지요."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수인선의 마지막 3단계 구간인 안산 한양대앞역~수원역이 12일 개통, 전 구간 운행을 시작한다. 철길을 걷어낸 지 꼭 25년 만이다.
앞자리 승객과 무릎이 맞닿을 정도로 폭이 좁아 '꼬마열차'라고 불린 수인선 협궤열차다.
1936년대 식민지 수탈이 목적이었지만 1960~70년대에는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학생들의 발이 됐고, 농어민들의 생계를 위한 유일한 교통 수단이기도 했다.
7일 오후 4시 경기 화성시 매송면 수인선 어천역 출입문에는 '지금은 열차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역사 안에서는 승차권 자동판매기 작동 검사 등 승객맞이 마무리가 한창이다.
어천리 일대는 과거 참외 농사가 잘 되던 곳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참외 농사를 지었다.이광재(69) 어천1리 이장은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참외 농사를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수확한 참외를 화물칸에 실어 인천의 경매장에 내다 팔곤 했다"고 회상했다.
"옛날에는 화물을 다 싣지 못하면 열차가 다 실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지금으로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열차기관사들도 정이 많았던 시절"이라고 돌아봤다.
이 이장은 저멀리 어천역사을 바라보며 지난 5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그때 내 나이가 열살 정도 됐으니 벌써 50년도 넘은 이야기다. 참외를 팔러 경매장에 가는 아버지를 따라서 인천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곤 했다"면서 "내가 따라가게 되면 집에 있는 어머니가 항상 같이 가줬다"며 미소지었다.
"인천은 당시 시골에 살고 있던 나에게는 새로운 놀이터였다. 경매장에서 참외 파는 모습을 구경하던 게 기억에 선명하다. 특히 경매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 식당에 들러 해장국을 먹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 어머니와 함께 수인선을 타고 인천을 다난 그 시절이 그립다"며 눈을 붉혔다.
어천리 마을 입구 인근 비닐하우스에서는 노부부가 쪼그리고 앉아 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수인선 언제 개통한데요?" 노부부가 물었다.
70여년째 이곳 어천리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20년 전 작고한 시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시아버지는 저녁에 수인선을 타고 인천으로 넘어가 동인천 배다리 시장에서 밤을 지새고 다음날 새벽에 경매로 참외를 팔아넘기고 아침에 돌아오곤 했다"고 떠올렸다."예전에는 수인선을 타고 인천도 가고 소래포구에 가서 새우젓도 사오고 했는데, 새로 생긴 어천역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
어천에서 인천 방향으로 위치한 야목역은 과거 어천역보다는 규모가 작은 간이역이었다. 주로 수원으로 학교를 가거나 어천역으로 물건을 실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화성에서 수인선을 타고 참외를 팔러 간 것처럼 인천에서 생선을 가지고 온 상인들이 이곳에서 팔았다고 한다.
야목1리 주민 조모(50)씨는 "예전에 수인선이 다닐 때는 소래포구 아주머니들이 생선을 머리에 이고 마을 한바퀴를 돌곤 했다. 생선 아주머니가 오는 날은 오랜만에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고 전했다.
철길을 따라 걷다 역무원에게 혼쭐이 나 도망친 기억도 있다.조씨는 "야목에서 어천 나갈 때 옛날에는 진흙 바닥인데다가 길도 꼬불꼬불 오래 걸렸다. 그래서 철길을 따라 걷곤 했다. 역무원들이 뛰쳐 나와 철길에서 내려가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며 웃었다.
종종 행운도 있었다."운 좋은 날은 철길 보수하는 선로 보수원들이 펌프형 핸드카를 가끔 태워줬다"는 것이다.
수원역 인근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일대에는 수인선 세류공원이 있다. 공원 입구에 실물크기의 협궤열차 모형이 있고 철길모양으로 보도블록도 만들었다.
협궤열차가 다니던 철길에는 600m가량의 수목터널이 조성돼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로 자리잡았다.
주민 이모(60)씨는 '더그덕덕 더그덕덕' 당시 열차 소리를 흉내냈다. "아저씨가 왔다갔다 차표 검사하면서 구멍을 뽕뽕 뚫어줬거든? 어려서도 밀면 넘어갈 것처럼 좁게 생겼다. 레일 폭이 좁고 파란색 두 칸짜리 열차가 잘도 움직였다"고 기억했다.
안양에서 안산 외가를 가려면 수원역에서 이 열차를 타야 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이곳에서 '꼬마열차'를 타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시골에서 수원으로, 또 인천으로 통학하던 사람도 있었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바구니 하나씩 들고 타기도 했다. 앉을 자리가 없으면 좁은 통로에 쪼그려 앉아 가기도 했고 열차가 연결된 부위에 매달려 바람을 쐬기도 했다"며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이씨는 "사리역 등 역사(驛舍)가 조그마한 간이역들이 많았다. 사리역에 내려서 논두렁길을 30분 정도 한참 걸어야 외가댁이 나오는데, 논두렁 황토길을 고무신을 신고 걷다 맨발로 밟으면 발가락 사이에 보드랍고 미끄러운 갯벌 흙이 끼곤 했다"며 흐뭇해 했다.
"새로 생기는 수인선에서 과거 수인선 느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반갑다. 그래도 예전 그 느낌이 살아나진 않겠지?"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꼬마열차가 사반세기 만에 최첨단 도시철도의 모습으로 재탄생해 돌아온다.
참외를, 생선을 머리에 이고 진 정겨운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더그덕덕 더그덕덕' 열차는 철로를 따라 12일부터 다시 추억을 실어 나르게 됐다.
마지막 미개통 구간인 수원 구간(수원~한양대)은 9500억원을 들여 건설됐으며 수원역∼고색역∼오목천역∼어천역∼야목역∼사리역∼안산 한양대앞으로 이어진다.
이 구간으로 모두 2조74억원이 투입된 수인선은 총길이 52.8㎞ 전 구간을 개통한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12일 수인선의 완전 개통으로 인천~경기 남부~서울을 잇는 수도권 남부 연계 철도망이 완성되면서 주민들의 교통편익이 증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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