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전국에 있는 마을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소멸'이다. 인구 1000만명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세월의 위력 앞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잣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소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5년간 역사소설과 사회파 소설을 써온 작가 김탁환은 끊임없이 더 빨리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그 또한 글 쓰는 기계가 됐음을 자각한다.
어느덧 소설가로서의 후반생을 준비해야 할 시기, 작업실을 벗어나 길 위를 걸었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품은 채 지방 곳곳의 마을로 향한 저자는 전라남도 곡성에서 농부과학자 이동현을 만나 두 번째 인생 발화의 시간을 함께했다.
농부과학자 이동현은 작가의 마을의 소멸에 대한 질문에 하나의 답이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이다. 그는 곡성에서 발아현미를 연구하고 가공하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15년째 이끌고 있는 기업가이자 미생물학 박사이며, 2019년 유엔식량기구 모범농민상을 받은 농부다.
들은 교집합이 전혀 없지만 서로의 거울이 되어 삶을 오롯이 비추며 이야기의 세계와 땅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시대에 그 가치가 퇴색되기도 하지만, '농(農)'과 '소설'처럼 각자 삶에서 결국 지키고 싶은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한다.
저자는 이 만남에서 소멸의 위기와 만물의 고통에 반응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이동현 대표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닌 지키는 태도’임을 깨닫는다.
이 책은 저자가 마을을 샅샅이 어루만진 끝에 쓴 르포형 에세이로서, 도시소설가가 마을소설가로서 내딛는 시작점이자 새로운 시도다. 328쪽, 해냄출판사,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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