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만 조합원 지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사회적대화로 끝내 퇴장

기사등록 2020/07/24 20:28:18

코로나19 노사정합의 책임지고 지도부 총사퇴

조합원 직선으로 당선된 위원장 사실상 탄핵

사회적책임론·구태 운동 방식 등 비난 못피해

대화 기조 냉각기 불가피…변화 씨앗은 남아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24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전날 대의원 투표 결과 '노사정 합의안'을 추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열린 사퇴 입장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0.07.24.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사회적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당선됐던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이 사회적대화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 물러나게 됐다. 

사회적대화를 변절로 여겼던 그동안의 기류를 뒤집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노사정 합의를 이끈 김 위원장이 사퇴함에 따라 민주노총의 향후 대화 행보 역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4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 대해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대적 요구를 걸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최종합의안 승인을 호소했지만 부결됐다"며 "임기가 5개월 남짓 남았지만 책임을 지고 위원장을 비롯해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도 사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지도부 총 사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는 지난 1일 강경파의 물리력을 동원한 저지로 노사정협약식 참석이 무산되자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해 합의안 추인을 시도했다. 합의안 추인에 대해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정파 논리의 영향을 덜 받는 임시대대로 의결 기구를 격상해 추인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강경파의 조직적 저항을 넘지는 못했다. 23일 임시대대에 앞서 반대파 대의원 809명은 합의안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등 압박 수위를 높였다. 김 위원장 역시 조직 내 만연한 정파 논리 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맞섰지만 개표 결과 합의문에 반대하는 비율은 60% 이상으로 집계됐다.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지도부로서 조합원, 각급 대표자들에게 제안했던 것은 최종안 승인만이 아닌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으로 취약계층, 사각지대 노동자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질서를 만들어가기 위함이었다"며 "그러나 저희의 부족함으로 이런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사퇴는 아픈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민주노총의 문제점과 앞으로의 행보 역시 그 그늘에 갇힐 것이란 우려로 이어진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7년 12월 재적 선거인 79만2889명중 41.4%가 투표한 상황에서 21만6962표(6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됐다.

극단 성향의 투쟁파와 온건한 대화파의 중간인 '국민파' 김 위원장이 당선되며 민주노총의 사회적대화 참여에도 긍정적 기대감이 모였다. 민주노총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대화에 참여했지만 결국 이를 빌미로 정리해고제·파견제가 도입돼 노동자를 희생시켰다는 트라우마가 있어 사회적대화를 변절로 여겨왔지만 이 같은 과거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당선 이후 지난해 초 문재인 정부가 출범시킨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는 경사노위에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당시 대의원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제시한 원안은 표결조차 되지 못했다.

실패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번 사회적대화를 시도한 데는 유례없는 코로나19 위기 속 노동계가 직면한 위기가 컸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24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전날 대의원 투표 결과 '노사정 합의안'을 추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해 열린 사퇴 입장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0.07.24. photo@newsis.com

김 위원장은 이날 사퇴 기자회견 이후 사석에서 "경사노위 참여가 결론이 난 이후 냉정하게 더 이상 추진이 어려웠다. 염두에도 두지 않았지만 오로지 코로나19 위기 때문이었다"며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말 5% 정도만이 성안에서 살고 나머지는 밖으로 밀릴 것이란 위기가 컸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자들의 피해가 막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조합원 직선제로 당선된 위원장을 사실상 탄핵시키게 되며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를 '이 빠진 호랑이'로 만드는 복잡한 의사결정 체계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이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고질적 정파 갈등은 대중조직보다 집단주의를 추구하는 조직에 가깝다는 평가도 잇따른다. 제1노총으로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조직 이기주의에 갇혀있다는 설명이다. 물리력을 동원해 위원장을 감금하다시피 한 행태는 민주노총이 노동 운동의 구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사회적대화 행보 역시 캄캄한 상황이다. 이미 노동계 안팎 다수가 정권 내 민주노총 패싱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힘입어 제1노총으로 등극했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정부와 여당의 불신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당장 내년부터 노동계가 참여하는 정부 산하 위원회에서 민주노총의 몫이 늘게되지만 이를 달가워할 분위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일각에선 민주노총의 사회적대화에 대한 냉각기는 불가피하지만 김명환 지도부가 변화의 씨앗을 남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임시대대의 표결에서 비록 반대가 805명(61.73%)으로 과반을 넘었지만 내부적으론 찬성표(499명·38.27%)가 선방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반대파조차 예상보다 찬성에 100표 이상이 몰렸다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폭력을 동반한 투쟁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고 있거나 또는 대화를 원하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짧았지만 김명환 지도부가 분명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이) 달라질 것이라 본다. 완전히 없어질 순 없지만 강경 세력은 분명 이전보다 줄어들 것"이라며 "대화를 통해 사회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 흐름이고 민주노총 역시 이 같은 흐름을 이겨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2020년의 사람들은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고 이를 한 데 모아내는 것이 노동계의 역할"이라며 "이 과정에서 지도부가 보여준 행보 자체도 이미 변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27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한다. 민주노총 규약에는 직선으로 선출된 위원장,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 유고시 비상대책위원회를 운영토록 명시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