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주재 2차 비상경제 중대본 회의서 논의 전망
30여년 연구·사업 시도·실패 반복…정부도 여전히 신중 입장
"국가 보건의료시스템과의 정합성 고려해 유용성 논의해야"
이에 따라 원격의료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의 사례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적합한 방식을 고민하고 관련 업계의 수용성을 높여가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국회 논의가 미뤄져 왔던 만큼 당장의 법 개정을 추진하기 보다는 관련 인프라 사업을 확장시켜 나가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이날 오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리는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에 원격의료를 포함한 '한국판 뉴딜' 추진 방향과 방안이 정식 안건으로 상정될 전망이다.
한국판 뉴딜은 대규모 국가사업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포스트(post)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해 나간다는 정책 구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마지막 비상경제회의에서 공식화됐다.
홍 부총리는 이어진 제1차 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정책이 사회간접자본(SOC) 등 대규모 토목 공사의 개념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기술과 인력을 활용한 디지털 기반의 대형 정보기술(IT) 프로젝트 기획 추진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 역시 지난 6일 "기업 정보, 바이오 데이터 등 금융·의료 분야 핵심 데이터를 과감히 개방하겠다"며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현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미래 산업으로서 원격의료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미래창조과학부 1차관을 역임했던 홍 부총리는 코로나19의 국내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초 원격의료 도입과 관련해 정부와 의료계가 전향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적었다.
코로나19와 유사한 사태가 향후 발생할 시 환자 격리나 의료진 감염 보호뿐 아니라 혈압, 당뇨 등 일반 질환에 대한 진료와 처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1988년 서울대학교병원과 연천보건소 간 원격 영상 진단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국가 주도의 원격의료 시범 사업이 추진됐지만, 당시의 IT 수준이나 사회경제적 환경, 법·제도 등이 미흡해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후 일부 대학병원이 시도한 사업은 연구·개발(R&D) 프로젝트 수준에 머물렀고 2000~2001년 등장했던 다수의 IT 벤처들도 잇따라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 2002년 의료법상 원격의료를 인정하고 2003년 의료법 시행규칙에 시설·장비를 규정하면서 의사와 의료인 간 원격의료가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하지만 관련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2010년(18대 국회)과 2014년(19대 국회), 2016년(20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 국회에 제출됐지만, 보건·의료 시민단체의 저항과 의료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이처럼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여전히 거센 만큼 정부는 최대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도입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국회를 거쳐야 하는 법·제도 개선보다는 행정부 차원에서 추진할 수 있는 관련 인프라 사업부터 강구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지난 2월24일부터 4월19일까지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을 허용한 결과 13만 건 이상의 처방이 이뤄졌고 별다른 오진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시범 사업부터 확대해 추진한다는 것이다.
관련 시범 사업은 과거에도 이뤄졌던 적이 있다. 2014년 9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보건소·의원 11곳과 특수지역 2곳에서 고혈압·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시범 사업 평가 결과 이용자 77%가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건복지부는 발표했었다. 2015년 4~12월 기간 이뤄진 시범 사업에서도 노인 요양 시설 환자의 87.9%, 도서벽지 환자의 83.0%가 만족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쌍방향 실시간 통신의 경우에만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메디케어는 개인 심리 치료, 약물 치료, 정신과 진단, 영양 치료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메디케이드 단위로는 주별로 보험을 보장하는 서비스의 범위가 천차만별이다.
일본은 2011년 후생성 통지문(한국의 고시에 해당) 내용을 개정해 원격의료 시행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했다. 초진이나 급성 질환은 대면 진료가 원칙이지만, 외딴섬이나 격오지에 있어 대면 진료가 어려운 경우나 최근까지 상당 기간에 걸쳐 계속적인 진료를 받은 만성 질환자 등의 경우 환자 측의 요청에 기초해 원격진료와 대면 진료를 적절히 조합할 수 있다.
의료보험 체계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는 프랑스는 2010년 관련법에서 원격 상담, 원격 감시 등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다만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인증, 환자의 식별, 환자의 의료 정보에 대한 의사의 접근 가능성 등이 보장돼야 한다. 또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중앙 또는 지방 보건 담당 기관과의 계약을 거쳐야 하는 조건도 있다.
독일의 경우 2000년 통합의료(integrated care) 개념을 의료 시스템에 투입한 후 2004년부터 건강보험 현대화법을 통해 의료 분야에서의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이 구축됐다. 2015년에 독일 의사협회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전에 대면 진료가 있었다면 원격 상담을 포함한 원격진료를 허용하며 정보통신 수단을 통해 질병에 관한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김대중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2016년 보건복지포럼에 실은 보고서에서 "원격의료의 유용성은 각국의 보건의료시스템과의 정합성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서 원격의료가 도입된다면 그 유용성이 얼마나 클 것인지가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유럽 등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해 허용 가능성을 영역별로 나눠 검토하고 의료진이 지켜야할 의무 사항, 환자의 동의 절차, 법적 책임, 개인정보 보호 등 세부 가이드라인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의 경우 의료기관 간 정보 교류 수준이 낮은 점도 보완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같은 해 펴낸 보고서에서 ▲기계적 결함에 의한 오진 가능성 ▲질병 등 개인 의료 정보에 대한 보안 강화 ▲정책 대상자인 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이 단말기 등 관련 장비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 ▲동네 의원이 아닌 대형 병원으로서의 환자 쏠림 현상 심화 등을 관련 쟁점으로 꼽았다.
입법조사처는 "흔한 경증 질환 관리, 건강 지표 체크, 만성 질환 악화 예방 등 1차 의료의 기능을 회복하는 전략으로 원격의료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wu@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