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국내미술시장은 '장인과 사위가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최고 비싼 그림(85억)의 작가 수화 김환기(1913~1974)가 장인이고, 단색화가 윤형근(1928~2007)이 사위다. 스승과 제자에서 가족이 됐다. 스승의 집에 드나들다 수화의 장녀 김영숙과 결혼했다. 장인과 사위였지만 나이 차이가 불과 15살밖에 나지 않아 선후배 같았고 예술 동지로 끈끈했다.
사위와 장인, 같은 추상화가지만 판은 완전 다르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 색점이 빛나는 김환기와 달리 윤형근은 거무튀튀한 갈색과 검은색을 썼다.
김환기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윤형근은 장인 작품을 "잔소리가 많고 하늘에서 노는 그림"이라고 견제했다. 자신은 "잔소리를 싹 뺀 외마디 소리를 그린다"고 했다.
그림처럼 묵직해 '침묵의 화가'로 불렸던 윤형근은 '한국현대미술의 침목'이 되고 있다. 미술시장 '김환기 대세'속에 윤형근의 진격이다. 생전 사후 장인도 못 누렸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사후 11년만에 회고전을 열었고,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첫 수출 전시로 베니스 포루트니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회고전을 열고 있다. "어떤 고요의 순간,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원한다면, 포르투니미술관의 윤형근 전시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호평속에 11월까지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꼭 봐야 할 전시'로도 꼽혔다.
윤형근은 일명 '단색화 4인방'(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윤형근)으로 2015년부터 특히 활기가 돌았다. 2017년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인 뉴욕 데이빗 즈워너 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는 작품이 완판, 한국의 단색화가로 명성을 높였다.
누렇고 검은 그림. 깊은 수묵향이 풍기지만 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신비주의와 단색화 열풍속에 격이 계속 높아졌다. 6~7년전, 1978년작 30호 크기 작품은 3600만원이었다. 하지만 3년전엔 1억2000만원, 최근에는 2억5000만원 선에 거래된다. 현재 최고가는 1977년 제작한 '엄버 블루'로 4억7064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2016년 11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낙찰됐다.
지난 5년간 윤형근의 그림은 252점이 경매에 나와 213점이 팔렸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약 100억원의 매출로, 낙찰총액 9위에 올라있다. 이는 서울옥션·케이옥션 등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거래한 낙찰가를 분석한 결과다.
이같은 내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k-artprice.newsi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9년 상반기 현재까지 팔린 262점중 윤형근 최고가 작품 TOP 10를 집계했다. (그래픽 참고)
1윤형근 Umber-Blue1977린넨에 유채67.7×199.7cm 4억7064만원 서울옥션 홍콩2016.11.27
2윤형근 Untitled1978마대에 유채162.6×130.3cm 3억1473만원 서울옥션 홍콩2015.05.31
3윤형근 무제1990린넨에 유채193.8×253.5cm 3억142만원 서울옥션 홍콩2015.10.05
4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 Blue1997캔버스에 유채208.5×333cm 2억6848만원서울옥션 홍콩2015.11.29
5윤형근 Umber-Blue1975~78린넨에 유채116.8×91cm 2억4312만원 K옥션 홍콩2016.05.29
6윤형근 무제 1989린넨에 유채145.5×97cm 2억3000만원 K옥션2017.10.18
7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6린넨에 유채97×162.2cm 1억7000만원 K옥션2019.03.20
8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3린넨에 유채97×162.2cm 1억7000만원 K옥션2019.01.23
9윤형근 Burnt Umber&Ultramarine1993린넨에 유채97×162.2cm 1억6000만원 K옥션2018.05.23
10윤형근 Burnt Umber and Ultramarine1996린넨에 유채97×162.2cm 1억6000만원 K옥션2018.03.21
★윤형근 관전 포인트= 최고가 10순위를 분석한 결과, 70년대 작품이 선호도가 가장 높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 초반까지 작품이 시장 가격을 이끌고 있다.
70년대 작품 가격을 살펴보면 소품 중심으로 형성됐다. 3호 크기 3500만원, 30호 크기 2억5000만원 전후로 10호 미만은 호당 1300만~1500만원선으로 파악됐다.
최근 5년간 낙찰가격 상위 10순위 중 1~5위까지 모두 서울옥션과 K옥션의 홍콩경매에서 기록을 세웠다. 특히 1~4위까지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
반면 6~10위까지는 모두 K옥션 국내 경매의 기록이다. 모두 90년대 초중반 작품이다. 이처럼 국내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시장 선호도가 높은 70년대 작품의 큰 거래는 보기드문 것을 알 수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국내의 경우 윤형근의 검은색 바탕을 크게 선호하지 않은 편이지만, 해외는 동양적인 정신성에 빗대어 깊이감으로 받아들인다는 평가다. 국현 서울관 초대전과 베니스 포르투니미술관 회고전이 호재로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윤형근 작품가격은 제작 연대, 번짐, 컨디션(보존상태) 등 3가지가 주요 변화요인이다. 70년대는 얼룩이 넓게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부드러움이 돋보이고, 기둥은 대개 2개인 경우가 많고, 바탕색은 갈색톤이 배어 있다. 80년대는 바탕의 검은 색조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번짐이 적어지는 편이다. 90년대는 검은 색조 바탕이 아주 진해지고, 번짐은 거의 없으며, 단단하고 경직된 느낌의 넓은 벽면기둥이 주를 이룬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은 각진 부분이 더 심해지고, 건조한 거친 느낌, 딱딱하고 유광의 느낌이 강해진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70년대~80년대 초반 작품은 지속적인 상승세로 전망했다. 최고가 2위를 차지한 70년대 말 100호 작품이 2015년에 3억원 초반에 낙찰된 후 현재 시장에서 4억~5억원 선에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윤형근= 인복 많은 화가다. 극내에서 평생 좌파로 찍혀 핍박받았지만 해외에서 온 미술인들이 그를 어둠에서 구원했다.
1974년 미국의 미술평론가 조셉 러브가 한국을 방문했을때다. 누리끼리하고 검은 작품을 보고 한 눈에 빠졌다. "한국 시골의 김칫독처럼 단순하고 흙냄새가 풍긴다"며 일본 동경화랑 창업자인 야마모토 타카시에게 알렸다. 야마모토 타카시는 1975년 단색화의 시발이 된 박서보 이동엽 서승원 허황 권영우의 그룹전 ‘5가지 흰색전’을 기획한 인물이다. 타카시는 1976년 윤형근의 첫 일본 개인전을 열고, 그의 서문을 일본에서 활동하던 이우환에 맡겼다.
42년 후인 2018년. '미술계 히딩크'로 불리던 마리 바르토메우 국립현대미술관장 눈에 들었다. 살아있는 단색화가들도 초대 받지 못한 자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윤형근 회고전이 열렸다.
당시 마리 관장과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윤형근을 제대로 조명하면 한국미술의 풀릴 수 있는 실마리가 많다"며 "단색화의 범주에서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윤형근의 진면모를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고 기대감은 적중했다. 2018년 8월 4일부터 12월 16일까지 열린 '윤형근 회고전'은 32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미술관 개인전 최고 관람객을 기록했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굳이 따지면 우리나라 윤형근을 단색화의 원조라고 할수 있지만, 그를 단색화 틀안에 넣기에는 옹졸해진다"고 했다. 간결하고 단순한 단색화로만 알려진 그의 진가는 베니스에서 입증했다. 포루투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은 화이트 큐브에서 전시와 달랐다. 고풍스런 미술관의 낡은 벽돌 벽과 나무 바닥과 조우하면서 강렬한 감동을 선사했다.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명상적이라는 평이 쏟아졌다.
누리끼리한 검은 그림. 처음부터 어두운 작업은 아니었다. 장인 김환기의 영향을 받아 밝은 색채를 사용했었다.
작업이 변한건 1973년 ‘반공법 위반’의 누명을 쓰고 서대문 형무소를 다녀온 후부터다. 유신체제가 한창이던 1973년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부정 입학했던 학생의 비리를 따져 물은게 죄가 됐다. 레닌 모자를 쓴다는 이유로 잡혀가 '반공법 위반' 죄목이 붙어 고초를 겪었다.
총 3번의 복역과 치안당국의 감시를 받는 핍박 속에서 채색 그림은 사라졌다. 극도와 분노와 울분이 검은 색면들로 흘러 내렸다. 미술교사도 그만두고 뚜렷한 직업 없이 요시찰인물로 등록된 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하기 시작한건 그의 나이 만 45세였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서정을 대신한 장인 김환기의 그림과 달리, 윤형근의 누런 작품들은 전란과 핍박속에서 살아남은 피와 땀의 기록이다.
색채는 엄버와 블루 두가지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은 후 테레빈유와 린시드유를 적당히 타서 농담을 조절했다. 이를 큰 붓에 푹 찍어 면포나 마포 위에 내려 그으며 10년간 매달렸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1회 입학생이 되면서 스승인 김환기와 인연이 이어졌다. 반골기질이 강했던 그는 미군정청의 ‘국립 서울대 설립안’에 반대했다가 제적됐고, 이후 홍익대학교로 편입할 때에도 김환기가 그를 이끌었다.
1974년 7월 뉴욕에서 타계한 김환기의 죽음을 통보받고 윤형근은 "너무나 불쌍하고 뭔지 모르게 한없이 원통해서 밤새도록 통곡을 했고" 죽음같은 고독속으로 빠져들었다.
말이 없이 살던 그는 "지상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라며 초월해졌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장인의 죽음에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고, 허무할 소다"라고 일기를 썼던 그도 2007년 12월 28일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였다.
격랑의 시대를 살아낸 사연이 흙빛의 그림 속에 다 녹아있다. 말년에 번짐도 없이 나온 '검은 그림'은 ‘죽음을 생각하라(memento mori)'는 경구로도 보인다.
윤형근 그림과 작품 가격은 뉴시스가 국내 언론 최초로 개발한 작품가격 사이트인 'K-Artprice(k-artprice.newsi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시스가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MOU를 맺고 선보인 작품가격 사이트에는 국내 경매사에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국내외 주요작가 200명의 작품가격을 제공한다. 작가당 5년간 거래 이력이 담긴 2만2400점의 가격을 한 눈에 파악 할 수 있다. 10만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황소 판화부터 김환기의 85억3000만원짜리 붉은 점화까지 작품가격이 총망라되어 있다. #클릭☞ K-Artprice(k-artpri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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