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별로 본 '세월호 사고가 남긴 의미'
기성세대들 "세월호, 다 어른들의 업보"
"세월호로 사회의 썩은 부분 드러난것"
'세월호 피로감' 언급한 세력에 분노도
10~30대 "세월호는 나에게 반성‧다짐"
"단원고 친구들 몫만큼 좋은 사람될 것"
아픈 기억들은 전국 곳곳 추모공간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년이란 시간동안 세월호는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은 연령을 막론하고 오래된 트라우마를 다시 꺼내듯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놨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아프게 기억하는 40~50대 기성세대들은 지금까지 이 사회를 만들어 온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했다. 일부는 참사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집단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다.
몇몇 젊은 세대들은 실감이 나지 않던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희생자들의 몫만큼 더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을 내놨고, 참사 이후 적극적이지 못했던 자신을 기억하며 반성하기도 했다.
◇기성세대들 "세월호, 안고 가야할 짐"
20년 넘게 경기도 안산에서 살아 온 김모(59)씨는 참사 당시의 슬픈 느낌을 기억하며 세월호 사건을 '어른들의 업보'라고 표현했다. 기성세대들이 쌓아 온 잘못된 시스템이 결국 세월호 참사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김씨는 "안산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때 그런 무거운 분위기는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면서 "도시 전체가 슬픈 기운에 억눌려 있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결국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우리나라 이곳저곳에서 썩은 부분들이 드러나지 않았나"라며 "우리 세대, 윗 세대들이 사회를 잘못 쌓아 왔다는 얘기"라고 언급했다. 또 "우리같은 어른들이 남은 평생을 짋어지고 가야할 업보"라고도 덧붙였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기억 공간' 개관식에서 만난 정남숙(여·55)씨는 유튜브 1인 방송을 통해 이 행사 소식을 듣고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정씨는 여전히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되고 있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어 당시 사건에 대해 "빨리 지시 구조를 못내린 점, 미흡했던 점 등이 안타깝다. 진상규명 등이 제대로 돼야 나라가 체계적인 구조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라면서 "이런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게 되면, 앞으로 이런 사고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4년 당시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김송희(42)씨는 세월호 기억 공간 개관식에 참석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로감을 언급하는 집단에 대해 일갈했다.
그는 "세월호에 대한 피로감 같은 건 정치적으로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거 같다"면서 “아이들 잃고 아픔 겪는 유족들이 있는데, 사찰하고 감시하는 건 두세 번 죽이는 거다. 태극기 부대 등이 안 좋은 인식들을 심어주려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같은 문제를 통해 국가의 안전이나 국민의 생명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거 같다"면서 "우리가 늘 보고 해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거니까 기억공간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경기 지역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최모(48)씨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됐을 것이라면서도,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최씨는 "(참사를) 당한 부모들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고, 사회 전반적으로도 상처가 컸던 것 같다"면서 "지금도 학생들 수학여행 보내면 사고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참사 이후 변화와 관련해 "학교에서는 안전 교육을 많이 하고, 학생들도 전보다 많이 참여하게 된 것 같긴 하다"고 설명했다.
단원고 학생들과 동갑내기인 대학생 조예진(여·22)씨는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몇 달간 우울했던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건 이후 단원고 친구들의 몫만큼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고 다음날 학교에서 반 친구들과 얘기하며 같이 울었고, 그 이후로 몇 달은 계속 우울했다"면서 2014년 4월을 회상했다. 또 "평소와 다름없이 깔깔대며 웃다가도 '이래도 되나'라고 생각하며 표정을 굳혔다.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날들이 이어졌던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이어 조씨는 "지금도 가끔 그 친구들 생각을 한다. 특히 학교에서 노란 리본이 달린 가방을 맨 사람을 볼 때. 그날의 일이 아니었다면 단원고 학생 중 한 명은 지금 나랑 같은 캠퍼스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우리 97년생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 친구들의 몫까지 더 좋은 사람이 돼서 더 많이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나에게 세월호는 다짐이다"라고 전했다.
2014년에 대학생이었던 노모(여·26)씨는 시험기간이었던 참사 당일의 기억을 회상하며 '세월호는 나에게 반성'이라고 정의했다.
당시 도서관에서 처음 세월호 침몰 속보를 본 노씨는 "충격적이었고, 문제가 많은 걸 알았지만, 학교 수업을 듣고 취업도 해야 한다는 핑계로 어떤 행동도 못했다"면서 "솔직히 말하자면 노란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도 망설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6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세월호 리본을 달기 시작했다는 노씨는 "온갖 정의로운 척은 다했는데 사실 비겁했다"면서 "나처럼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유족들이 힘을 잃지 않고 싸워준 것에 대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너무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내가 나온 학교의 일이다 보니 크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강원에서 산불 났을 때 대응을 잘해서 비교적 큰 피해 없이 마무리 됐잖나. 그렇게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시작이 어떻게 보면 세월호가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추모 공간으로 남은 아픈 기억들
이처럼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슬픔', '상처', '분노', '안타까움', '부끄러움' 등으로 남은 세월호 참사는 전국 곳곳의 추모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개관한 '기억·안전전시공간'이다. 지난달 약 4년8개월 만에 세월호 천막이 철거된 이후 대신 들어선 추모 공간이다. 이곳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다짐하고 안전의식을 함양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자리한 '팽목 기억관'도 대표적인 추모 공간 중 하나다. 이곳도 지난해 9월 팽목항 분향소가 철수한 뒤 새로 들어선 공간이다. 기억관 내부에는 희생자의 영정 사진 대신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웃고 있는 단체 사진이 대신 걸렸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기억교실'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2년4개월 동안 단원고 내에 있던 기억교실은 2016년 11월부터 이곳으로 이전돼 공개되고 있다.
이외에도 세월호 추모공간은 ▲광주 천변공원 세월호 기억공간 ▲서울광장 세월호 분향소 표지석 등 전국 곳곳에 마련돼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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