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대내외 메시지
"제재 문제 집착 안해, 우리 힘으로 부흥"
"모든 평화애호역량과 손잡고 나갈 것"
"남의 식, 남의 풍 추호도 허용 않을 것"
대미 협상 장기화 염두 중·러 활용할 듯
金, 대외적 국가수반 '광폭 외교' 전망
"北, 과거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2일회의에 참석해 시정연설에서 대내 메시지뿐만 아니라 대남·대미 메시지도 선명하게 밝혔다.
13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공화국 정부는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과 협조의 유대를 강화 발전시켜나갈 것"이라며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세계 모든 평화애호역량과 굳게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더불어 "적대세력들의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우리의 힘으로 부흥의 앞길을 열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4·27 남북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한 데 이어 6·12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차 약속했다. 그러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교착 국면을 거듭했고, 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셈법'의 간극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북한 입장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로 민생 분야에 대한 대북제재만이라고 풀어보려고 했으나,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은 오히려 회담 결렬 이후 핵시설 폐기와 핵무력 반출 등 과거·현재·미래핵을 모두 아우르는, 이른바 '빅딜'을 요구하며 허들을 높였다.
'새로운 길'이라는 개념은 올해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처음 제시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대북제재 전략에 기반한 비핵화 협상 기조를 유지할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의 입을 통해 '새로운 길'을 언급하며 "이제는 뭐가 돼도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나아가 "국가 근본 이익에 배치되는 요구를 제재 해제의 조건으로 내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와 미국과의 대치는 어차피 장기성을 띠게 되어있다"고 밝히며 현재의 협상 교착 국면에 초조해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대내외에 분명히 했다. 이는 협상 창구를 다변화하겠다는 이야기도 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적극 활용할 거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중국은 북미 비핵화 협상 진행 상황을 내밀하게 공유하며 필요할 때는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비핵화에 대한 지지 의사 표명을 꺼리지 않았다. 러시아는 소련 연방이 해체될 때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의 비핵화를 이끈 경험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안보리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북미 비핵화 국면에서의 국제사회 여론 형성과 기술적·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하다.
김 위원장은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외적으로 국가수반의 역할과 권한을 가지고 있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을 부여하며 자신의 아래로 두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실질적 국가수반에서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에 등극한 것이다. 이는 서방 국가와의 정상외교에서 다소 걸림돌이 됐던 '자격'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향후 국가 대 국가 간 정상외교에도 적극 나서며 비핵화 여론전을 벌일 거라는 전망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미국이 제재에 매달려 변화하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협상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외교적 다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과거의 길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설명했다.
jiki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