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 지휘자는 1995년 일본에서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만났다. 윤이상은 그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만남 당시 윤이상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40도 가까운 고열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이야기는 나누면서 삶의 애환이 가득 묻어나는 그의 모습에서 작곡가를 넘어 인간으로서 큰그릇이라는 것을 느꼈다.
지휘자 정치용(62)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윤이상 선생님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정 지휘자는 '윤이상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1994년 윤이상의 음반이 국내 레이블로는 처음 출반됐을 때도 참여했고 고인의 음악을 꾸준히 조명해왔다.
4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2019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자신이 이끄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들려준 윤이상 교향곡 3번도 명연이었다. 1985년 초연된 이 곡은 거대한 스케일, 어마어마한 박력이 돋보인다.
과거 윤이상 교향곡 1번도 지휘한 정 지휘자는 "3번은 상당히 구족적인 매력이 있어요. 강한 부분과 여린 부분이 확실히 대비가 됩니다. 강렬한 것과 부드러운 것의 조화라고 할까요. 음양의 조화라고 할 수 있죠"라고 설명했다. "윤 선생님의 곡은 대중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이 담으려고 한 이미지가 분명했어요. 한국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길을 보여준 것이지요."
정 지휘자의 거장에 대한 존중은 이어진다. 같은 날 코리안 심포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키호테를 협연한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1)다. 마이스키를 이날 처음 만났다는 그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실력이 훌륭하고 대단했어요. 저희 단원들도 좋은 연주자를 만났다고 다들 즐거워했죠"라고 전했다.
정 지휘자는 서울대 작곡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악원 지휘과를 나왔다. 서울시교향악단 단장과 인천시향·원주시향·창원시향 등에서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1991년 KBS홀 개관기념 팝스콘서트로 국내 데뷔했다. 대중음악을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들려줬다. 유연한 지휘자라는 평을 듣는 이유다. 이후 관현악과 오페라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윤이상을 비롯 현대 창작음악에도 정통함을 보여줬다.
2019 교향악축제의 하나로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코리안 심포니 무대에서는 엘가의 바이올린 협주곡뿐만 아니라 이 악단의 상주작곡가인 한국계 미국인 폴 연 리(이수연)의 '코리안 오버추어'를 세계 초연하고, 본 윌리엄스 교향곡 제5번도 들려준다.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지 1년이 지났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이 오케스트라는 정기연주회뿐만 아니라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등의 공연을 함께 하는 등 다양한 연주를 소화해야 한다. 스펙트럼이 넓은 정 지휘자와 호흡이 척척 맡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 지휘자는 "다른 교향악단보다 훨씬 연주를 많이 하는 단체에요. 짧은 시간에 다양한 장르를 하다 보니 서로 빨리 익숙해졌죠. 스케줄이 많아 바쁘기는 한데 그 덕에 소통을 더 잘하고 있습니다"라고 수용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출신 박선희(44) 대표가 올해 1월 이 교향악단으로 왔다. 정 지휘자는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아주 지혜로운 분이에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도 크고요. 편안하고 믿음이 가요"라고 했다.
30대 젊은 나이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가 되며 국내 클래식음악 기반을 다지는데 기여한 정 지휘자는 "연주자들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구축되는 등 상당히 비약적인 발전을 했어요"라고 평가했다.
그래도 과제는 산적해있다. 특히 기업의 클래식음악 후원이 아쉽다. "민간 기업이 대가 없이 후원을 해야 연주단체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요. 여러 예술적인 한계를 느낄 수 있는 제약을 벗어날 수 있죠. 일가를 이룬 분들이 음악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면, 음악가들이 내실을 기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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