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외교문서]KAL기 폭파 대북 규탄 전방위 외교전…北 "조작극"

기사등록 2019/03/31 12:00:00

대북규탄 특별대책반 윤병세, 조태용 등 참여

美대사관 공사 초치해 '응징' 조치 마련 촉구

美 "안보리 결의 최상이나 의장 성명도 대안"

ICAO 국제회의서 韓 대표 연설 통해 北 규탄

北 "조작극, 南측 발언 중 KAL 관련 삭제해야"

【서울=뉴시스】 KAL 858기 동체 잔해물(앞바퀴 랜딩기어). 2019.03.2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1987년 11월 KAL기 폭파 사건 발생 후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규탄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전방위 외교전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31일 비밀해제된 1988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사고 발생 이듬해 1월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정부는 국제기구를 통해 KAL기 사건 관련 대북 규탄 여론을 만들기 위한 특별대책반을 구성했다. 여기에는 당시 서기관이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사무관이던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 1차장 등도 참여했다.

정부는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뿐만 아니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무역기구(WTO) 등 거의 모든 국제기구를 상대로 대북 규탄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미국은 적극적이었다. 외교부는 주한 미대사관 공사를 초치해 국제기구에서의 '응징' 조치와 미국의 직접적 조치 등에 관한 문제를 논의했다. 한국은 외교부 장관을 통해 북한의 테러 행위에 대해 미국 등 관계국이 규탄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1988년 1월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며 대북 규탄 조치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안보리를 통한 규탄 결의안 통과가 가장 효과적인 제재 조치라는 입장도 밝혔다. 이후 한국 측과의 면담에서 "결의안 채택이 최상이나, 중국과 소련의 입장을 고려해 의장 명의 성명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는 등 물밑 조율도 이어갔다.

유엔 회원국들의 입장에 온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88년 1월 안보리 의장국이던 영국은 중국과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확신하며 문제 제기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했다. 그럼에도 KAL기 사건은 안보리에서 표결 없이 토의 의제로 채택됐다.
 
같은 해 2월3일 기준 북한을 지칭해 규탄한 국가는 18개국이었다. 미국, 영국, 일본, 호주, 중국, 싱가포르, 세인트빈센트 등이었다. 그외 북한을 지칭했으나 우회 ·간접적으로 규탄한 나라는 23개국, 북한을 지칭하지 않고 테러 행위를 규탄한 나라는 23개국이었다.

베네수엘라 북부의 도서국가인 세인트빈센트는 KAL기 폭파 이후 북한과 단교를 결정한 첫 번째 국가가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단독 수교국은 60개국에서 61개국으로 증가했으며, 북한의 수교국 수는 101개국에서 100개국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국제기구의 입장은 한국 정부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총재는 "테러행위는 규탄하나 공개적 성명 발표는 ICRC 관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물러섰다. 국제해사기구(IMO)는 ICAO의 관할이기 때문에 대외적 입장을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세계 YMCA도 한국 정부의 규탄성명 채택 요청을 거절했다. 국제의원연맹(IPU)도 사무총장 명의의 성명은 발표하지 않겠다고 한국 측에 밝혔다.

정부는 ICAO가 주관한 항공법 관련 국제회의를 계기로 대북 규탄 여론 형성 외교전을 펼치려 했으나 녹록지 않았다. KAL기 폭파 사건이 회의 의제와 관련성이 떨어져 참가국들의 호응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 진행에 해가 될 수 있다는 회의적 반응까지 있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수석대표 연설에서 북한을 규탄했다. 이에 북한은 한국 측의 발언 중 KAL기 관련 부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으며, 이어진 발언에서 "KAL기 폭파는 조작극이며, 과거 한국은 국내 정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김대중 납치 사건과 김포공항 폭파 등을 연출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외교부는 이날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노태우 제13대 대통령 취임식 등의 내용이 포함된 1602권(약 25만여쪽)의 1988년 외교문서를 해제했다.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 가능하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26차에 걸쳐 총 2만6600여권(약 370만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해 왔다.

 jiki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