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온다고 공연 준비했는데"…들떴던 하노이, 일상으로

기사등록 2019/03/03 08:30:00

김정은 방문 예상됐던 베트남-북한 우정 유치원

아이들 치장하고 아리랑 노래 맞춰 부채춤 연습

'방문 환영한다' 간판까지 준비했지만 결국 불발

김정은 숙소 멜리아호텔 등 시내 곳곳 일상 회복

시민들 "2차 북미회담 성공적이리라 다들 예상"

"베트남, 호스트 국가로서 한국인들과 기분 비슷"

【하노이(베트남)=뉴시스】김성진 기자 = 하노이 '베트남-북한 우정 유치원'에 북한 방문단을 환영한다는 간판이 세워졌다. 사진은 지난 1일 오전 방문단 환영을 예상해 유치원 교사들이 율동을 연습하는 모습. 2019.03.02  ksj87@newsis.com
【하노이(베트남)=뉴시스】김성진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박5일 베트남 방문 일정이 모두 끝났다.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54년 만에 베트남을 찾은 김 위원장의 방문에 하노이 이곳저곳은 들떴고, 또 다시 가라 앉았다.

특히 지난 1일 김 위원장의 방문이 점쳐졌던 베트남-북한 우정 유치원은 베트남 사람들이 자주 즐기는 시에스타(siesta·낮잠)에 빠진 것 처럼 다시 조용해졌다. 주말이라 원생들이 오지 않는 유치원의 풍경은 쓸쓸하기까지 했다.

베트남-북한 유치원은 하노이에 있는 베트남과 북한 어린이를 위한 유일한 유치원으로 지금도 북한 관계자와 대사관 직원들이 때때로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유치원 교사와 원생들은 김 위원장과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수행원단이 방문할 것에 대비해 유치원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 공연 연습까지 했다. 앞쪽에는 수행원단을 위해 하얀색 천을 씌우고 붉은 리본으로 장식한 의자 24개가 깔렸다.

한복과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은 교사와 원생들은 함께 부채를 들고 아리랑에 맞춰 부채춤을 추는 등 혹시나 모를 방문에 준비가 한창이었다. 베트남 음악에 맞춘 율동도 연습했다.

원생들의 얼굴에는 북한 인공기와 베트남 금성홍기가 페이스 페인팅돼 있었고, 고사리 손에는 두 나라의 국기가 쥐어졌다. 유치원 여기저기를 뛰놀던 아이들은 모두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하노이(베트남)=뉴시스】 김지현 기자 =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를 방문한 27일 베트남-북한 우정유치원 김정일반에서 원아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이 유치원은 1978년 북한의 지원으로 설립됐다. 2019.02.27. fine@newsis.com
유치원 관계자는 당시 뉴시스 취재진에게 "북한 방문단이 오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정보가 없다"며 "행사를 언제 시작할지도 알 수 없지만,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오기를 희망한다"면서도"북한 보안요원들이 방문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또 유치원 곳곳에는 두 나라의 국기가 걸려 있었다. 여러가지 모양으로 자른 색종이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이나 김일성-호치민의 흑백사진이 붙어있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손으로 그린 국기들도 교실에 매달렸다.

이와 함께 무대 한켠에는 북한 방문단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간판도 세워졌다. 한쪽에서는 작업자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간판을 준비했지만 끝내 사용하지 못했다.

유치원 정문에서 안내 역할을 맡은 여자 아이는 '김 위원장을 아냐'는 취재진 질문에 "모른다"면서도 김 위원장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아이는 연습에 지친 듯 하품을 하며 "빨리 자고 싶다"고 말해 취재진을 웃음짓게 만들었다.

율동 연습에 노곤해진 아이들이 '시에스타'에 빠진 점심시간에는 유치원 인근 거리까지 고요해졌다. 인근 식당도 마찬가지로 문을 닫은 채 잠들어 있었다.

【하노이(베트남)=뉴시스】 전진환 기자 =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을 방문한 가운데 27일 오전(현지시각) 김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공안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2019.02.27. amin2@newsis.com
한 주민은 취재진과 만나 "원래 식당을 열어야 하지만, '체어맨'(김 위원장)이 온다고 해서 지금은 한 곳만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 당국의 조치냐'는 질문에는 "모른다"고 했다.

비록 김 위원장은 이날 오지 않았지만 지난 1일 베트남 국제 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환영만찬에는 유치원장이 공식 초청됐다. 만찬장에 가는 원장을 우연히 ICC 앞 사거리에서 만났지만, 원장은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하노이 곳곳은 김 위원장이 가는 곳마다 유치원 인근 거리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수많은 오토바이로 번잡한 시내 거리는 김 위원장이 이동할 때마다 일시적으로 완전히 통제돼 평소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했다.

또 김 위원장의 숙소인 멜리아 호텔 앞 건물들은 모두 당국에 의해 출입이 금지됐다. 늦은 밤에도 1층 정도만 문을 열어 장사를 하거나 사용됐고, 나머지 층은 불이 꺼져 있었다.

다시 일상을 되찾은 하노이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랑선(베트남)=뉴시스】고승민 기자 = 제2차 북미정상회담과 베트남 국빈방문 일정을 모두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특별열차에 탑승해 베트남을 떠난 2일 김 위원장이 밟았던 레드카펫을 현지 어린이가 웃으며 뛰고 있다.  2019.03.02.kkssmm99@newsis.com
택시 운전사 호앙 만 추옹(40)은 "미디어(언론)에서 회담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며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당신들(한국 취재진)과 같았다"고 말했다.

베트남 신문인 뚜오이쩨(Tuoitre)의 부이 응옥 하(22) 기자는 "많은 시민들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호스트인 베트남 정부도 이런 결과에 유감인 모습"이라고 전했다.

그는 "베트남 언론들도 이번 회담에 긍정적인 전망을 썼다"며 "이곳을 찾은 많은 한국인들과 하노이 시민들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베트남-북한 우정 유치원 외에도 하노이 인근 박닌성 옌퐁공단의 삼성전자 공장을 찾을 거라는 관측 등도 제기됐지만 방문 기간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삼성전자 공장이나 LG전자 공장을 방문할 것이란 가능성이 제기되며, 기업들도 내부적으로는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무산되면서 아쉬움도 감지됐다.

【랑선(베트남)=뉴시스】고승민 기자 = 제2차 북미정상회담과 베트남 국빈방문 일정을 모두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오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특별열차에 탑승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2019.03.02.kkssmm99@newsis.com
현지 소식통은 "공식적인 방문 요청은 없었지만, 기업 관계자들도 어느 정도 기대는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6일 도착 후 회담이 시작된 27일까지 두문불출하며 회담 준비에 전력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28일 회담 결렬 이후에도 숙소에 머물렀고, 베트남 공식방문 기간인 1~2일에는 베트남 국가주석과 총리 등을 만나며 공식 일정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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