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北비핵화 견인 상응조치로 한국 역할 활용해달라"
"美가 남북경협 사업 요구한다면 떠맡을 각오 돼있어"
靑 "트럼프 협상카드 우리가 늘려줄 수 있다는 의미"
"文 남북 경협 언급에 트럼프 대통령 반응도 긍정적"
美, 연락사무소 설치·종전선언 등에 더해 '+α' 고민
북미, 단순 관계 개선보다 '실질 성과' 필요한 시점
남북 경협 '지렛대'로 '빅딜'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실현 가능한 금강산 관광 재개 우선 순위로 거론돼
"비건 대표, 방한서 금강산 관광 등 상당 수준 대화"
"하노이 선언에 포함 안 돼도 물밑 접촉 활발할 듯"
문 대통령은 전날인 19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 달라"고 전했다. 이어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며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를 염두에 둔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대북제재 기조가 철도·도로 연결을 비롯한 남북경협 사업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놓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북한의 영변 핵 시설 폐기에 대한 실질적인 상응조치 방안을 고민 중인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우리 정부 입장에서 제공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돌파구가 마땅치 않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고려해볼 만한 카드를 던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20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당신이 트럼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협상) 카드의 종류를 우리가 늘려줄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현재 상응조치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나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다자간 대화 재개 외에 피부에 와닿는 '플러스 알파(+α)'의 당근책을 제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 측과도 상당한 교감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한 당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협과 관련한 작업을 상당히 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의 카드가 명확한 상황에서 부족한 상응조치를 채울 아이디어를 만든 차원이었다"고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발언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읽히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제재를 완화하는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게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남북경협 언급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과 관련해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테이블이나 합의문에서는 남북경협에 대한 내용을 구체화하거나 공식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경협의 한 축인 우리 정부가 빠진 상황에서 북미 간에 경협 사항을 공식 의제로 세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북미 정상회담 기간 남북경협에 관한 물밑 대화는 충분히 진행될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특히 이 같은 관측에는 남북경협이 제재와 연결된 만큼 미국에게는 실질적인 협상 옵션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다.
홍 실장은 "미국이 제재를 계속 유지하되 특정 어느 시점에 비핵화가 이뤄져야지만 검토하고 해제하겠다고 할 것으로 본다"며 "다만 남북 간의 이행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미 정상으로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단순 관계 개선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돼야 하는 만큼, 제재라는 틀을 유지하는 속에서 남북경협 카드를 지렛대로 한 '빅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경협 역할론'을 제시하며 "이번 회담이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관계 발전을 구체화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에서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이 끝나면 곧 전화를 걸어서 회담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말을 처음 했고, 이어서 바로 직접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얘기했다"면서 "왜냐면 할 얘기가 많기 때문이고, 할 얘기가 많은 이유는 이번 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먼저 실현 가능한 수단인 금강산 관광 재개가 선행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정부 입장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 외교 소식통도 "미국 측에서도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에서는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들었다"며 "북미 2차 정상회담 진전이 있을 경우 금강산관광은 올 상반기 안에 재개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구체화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제재 상황"이라면서 "민간 전문가들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방안을 갖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그런 것들은 상황이 되면 판단해볼 수 있겠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게 없다"고 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19일(현지시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실무책임자인 비건 특별대표가 베트남 하노이를 향해 출발했다고 발표했다. 비건 대표의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전 주 스페인 대사) 일행도 베이징을 거쳐 20일께 하노이에 도착할 것으로 알려져 있어 조만간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우리 외교부도 비건 대표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구체적인 만남 일정이 정해진 것은 없지만 한미 수석대표 간 접촉이 기대된다고 밝혀, 남북 경협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우리 측 입장을 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ksj8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