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가비상사태'가 뭐길래…위헌 논란 속 전망 엇갈려

기사등록 2019/01/11 15:50:52

트럼프, 군에 예산 전용 가능성 타진

공화당 상원 다수, 비상사태 선포 반대

비상사태, 대통령 권한이지만 기준 논란

【매캘런=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 매캘런의 멕시코 접경 지역을 돌아보며 이야기하고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매캘런과 인근 국경 지역을 방문해 장벽 건설은 인신매매와 마약을 막을 수 있다며 국경장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19.01.11.
【서울=뉴시스】이현주 기자 =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연방정부 셧다운(일부 업무정지)을 해결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헌적 요소로 인한 국가적 소송전으로 번질 위험성이 있어 실제 선포를 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1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백악관은 국경 장벽 예산 확보를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 초기 작업에 들어갔다.

익명의 소식통들에 의하면 정부는 지난해 재난 복구를 위해 배정한 139억 달러(약 15조5166억원) 중 미사용된 군 예산을 장벽 건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검토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에 관련 예산을 장벽 건설을 위한 목적으로 돌릴 수 있을지 여부를 45일 안에 결정하라고 지시했다. 해당 예산에는 허리케인 하비, 마리아 등으로 인한 피해 복구 및 각종 홍수 방지 프로젝트에 사용될 돈이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텍사스주 국경지대로 떠나기 전 백악관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과 국경장벽 예산에 합의할 수 없을 경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며 국가비상사태 선포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그는 "정부 셧다운을 끝내기 위해 의회와 협력하며 타협에 나설 것"이라면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비상권한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일부 중진 등도 일단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장벽 건설에 대한 예산 없이는 셧다운을 풀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은 국경에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친트럼프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은 현재 상황에 대해 "우울하다"면서도 국경장벽을 위해 대통령이 비상권한을 사용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의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국경 현실에 부합한다며 대통령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 다수가 비상사태 선포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섣불리 강행하진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의회전문지 더힐에 의하면 대통령 지지자들로 알려진 공화당 상원의원 다수는 비상사태 선포가 '최후의 수단'이라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존 코린 의원(텍사스)은 비상사태 선포가 장벽을 둘러싼 분쟁을 몇 년이나 끌게 만들 것이며, 정부는 기나긴 소송에 직면해 트럼프 대통령의 장벽 건설은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DC=AP/뉴시스】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왼쪽)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을 마치고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펠로시 의장은 기자들에게 "백악관 내의 온도가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라고 말해 회동 분위기가 싸늘했음을 시사했다. 슈머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탁자를 내리치고 걸어 나갔다"라며 회동 결렬을 전했다. 2019.01.10. 
중도파인 수전 콜린스 의원은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포권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적으로 근거가 약하며 소송이 걸릴 것이다. 대통령은 의회와 타협하는 것이 낫다"며 "용도가 정해진 국방 예산을 50억 달러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가능성은 낮다고 점쳤다. 현재 국경에서의 상황이 비상사태로 분류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이견이 있으며 수개월, 수년에 걸친 소송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비상사태는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전쟁 등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 행정부가 위기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할 수 있다.

1976년 만들어진 국가비상사태법(National Emergencies Act)은 비상 상황 하에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 자체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역대 미국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경우는 자연재해 상황을 제외하고도 최소 58회나 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11년 9.11테러 때 선포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비상사태를 선포한 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확산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한 바 있다.   

하지만 비상사태의 기준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 국경의 현실을 비상상황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최근 20년 동안 불법 이민자들의 수는 감소세를 보이는 등 뒷받침할 자료는 부족하다.

브레넌 사법센터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어떤 권한을 사용할지 정확히 명시해야 한다. 그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권한을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말한 적 없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장벽을 위한 돈은 주로 군 예산에서 나올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막사 건설 등 군을 위해 편성된 예산을 전용해 사용할 것이며, 군인들이 동원돼 장벽을 건설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상하원 동의 아래 의회 차원의 비상사태 종결은 할 수 있지만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다. 1976년 국가비상사태법이 생긴 이후 의회가 대통령의 비상사태를 끝낼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한 적은 한번도 없다.

단 민주당이 소송전으로 대응할 수는 있다. 1952년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 직후 철강산업 국유화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리며 실패로 돌아갔다.

 lovelypsych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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