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자하로바에게 바치는 반성문, 발레 '라 바야데르'

기사등록 2018/11/02 13:56:11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지척인데 무대 위는 천상계였다. 1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진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라 바야데르'에서 '세기의 발레 여신' 스베틀라나 자하로바(39)는 천상의 발레 경지를 보여줬다.

173㎝의 키, 긴 팔다리, 작은 얼굴로 '신이 내린 몸'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라 바야데르'의 니키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도 모자라 장면마다 스냅사진을 찍는 것처럼 회화적이었다.

대나무처럼 쭉 뻗은 동시에 철갑상어 같이 단단하고 매끈한 팔, 발끝 이외 양 발의 모든 부분을 밀착시키는 기본자세이자 상당수 동작의 출발점인 5번 포지션의 허벅지·종아리 근육은 가장 좋은 발레 교본에서 본 삽화 그대로였다.

물론 자하로바가 '천상의 발레리나'로 칭송받는 것은 타고난 신체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관객의 엉덩이까지 들썩거리게 만드는 점프할 때의 상승감, 잘 만든 컵을 원목 테이블에 살짝 내려놓았을 때의 소리만큼만 들리는 토슈즈 착지, 창작만큼의 기나긴 노력의 고통을 거치고 나서야 완성된 동작, 기술들이었다.

관객을 홀리는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라 바야데르'와 이 작품의 주역 니키아는 자하로바에게 뜻깊다. 마린스키발레단 부속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출신인 자하로바의 이 학교 졸업작품이 '라 바야데르' 3막이었다.

자하로바가 현재 몸담은 볼쇼이발레단과 함께 러시아에서 양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곳이자 그녀가 과거에 처음 입단한 발레단인 마린스키에 몸을 담기 시작하면서 이 작품의 전막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꿈도 꿨다.
그 만큼 자하로바는 옷을 입은 듯 니키아를 연기했다. 1막에서부터 3막까지 전반적인 분위기나 무용수의 움직임 혹은 테크닉 측면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상당히 다면적인 캐릭터다.

사랑의 설렘에 들떠 있는 1막에서 니키아는 섬세하다. 사랑에 취하고 좌절 당하는 2막에서는 아찔하고 격렬했다. 특히 독사에 물린 뒤 전사 솔로르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짝사랑하는 '브라만'의 약도 거절하고 죽는 장면은, 무대 위에 '선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에너지를 발휘했다.

3막은 더 부연해봤자 감흥의 날을 무디게 만들 뿐이다. 솔로르와 2인무에서 그녀는 발레라는 풍경의 절대치를 만들어낸다. 발레는 아름다운 장르며, 이를 보는 것은 축복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심지어 '무대 위에서 발레라는 도를 닦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경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발레의 정령'으로 봐도 무방하다. 올해 마흔살이 된 자하로바에게는 나이, 은퇴 관련 질문들이 끊임없이 폭격했다. 일조한 이로서 사과한다. 이들을 여유롭게 넘기며 '당신의 지금 모습이 당신의 세월을 얘기한다'고 했는데 그 뜻을 이제야 실감한다. 당분간은 그녀 앞에서 '은퇴'의 'ㅇ'도 꺼내기 힘드리라.

이번에 자하로바는 객원 무용수 자격으로 '라 바야데르'에 출연했다. 솔로르를 맡아 자하로바와 호흡을 맞춘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데니스 로드킨의 안정적인 회전과 점프도 인상적이었다. 니키아와 연적 관계로 그녀를 죽음으로 몬 감자티 역의 강미선은 두 무용수의 명성과 신체조건에 못지 않은 안정적인 연기와 동작을 선보였다.
'라 바야데르' 군무의 백미는 3막 2장 '망령들의 왕국'. 새하얀 튀튀와 스카프를 두른 채 흰색 무희들이 절제된 동작으로 끊임없이 줄지어 내려오는 모습은 유니버설발레단 군무진의 일사불란함을 증명했다.

이번 작품은 세종문화회관 4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자하로바와 로드킨은 4일 한 차례 더 무대에 오른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강미선은 니키아도 연기한다. 3일 오후 7시30분 공연에 니키아로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무대에 오른다. 홍향기와 이현준(2일), 김유진과 이동탁(3일 오후 3시) 등도 니키아와 솔로르로 각각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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