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도, 사기도 힘든 시장…매도·매수자 '관망세' 지속
양도세 내느니 증여…9월까지 서울 아파트 증여 최대
다주택자, "일단 지켜보자"…종부세 개편 본격 '분수령'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서울 강남에 사는 다주택자 김모(67)씨는 최근 자녀에게 85㎡ 아파트 한채를 물려줬다.
정부가 지난 4월 양도세 중과를 본격 시행하자 미뤄뒀던 증여와 함께 다주택자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다.
김씨는 "다주택자로 계속 버틸까 하다가 자녀에게 증여하는게 부담이 덜 된다고 판단했다"며 "주위에서도 자녀에게 절세목적으로 아파트를 증여하는 경우가 많고 이 기회에 다주택자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주택자들을 옥죄는 전방위 규제정책을 본격 시행한 가운데 향후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9.13대책 이후 부동산시장이 관망세로 돌아서고 당분간 거래 절벽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면서 다주택자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에도 버티던 다주택자들이 정부의 거듭된 압박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다주택자 규제정책에 드라이브를 가속화하면서 쓸수 있는 규제 카드를 남김없이 쓰겠다는 입장이다. 내년 공시지가 현실화로 다주택자의 종부세 부담을 늘리는 등 아껴온 보유세 개편 카드를 추진하고 있다. 다주택자의 부동산을 시장에 매물로 이끌어 공급을 늘리겠다는 강력한 의도로 읽힌다.
다주택자가 보유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 정부의 바람대로 부동산시장의 무게 중심이 집값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양도세, 중과세 대상 지역의 다주택자 소유 부동산은 약 85만채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에서 집 한채를 소유한 가구수는 1074만 가구다. 이중 집 한채만 가진 가구는 전체의 33%에 해당하는 350만 가구에 불과하다. 나머지 720만 가구는 집을 두채 이상 가진 다가구인 것이다.
또 다주택자 상위 10명이 보유한 주택은 모두 3800채로 1인당 평균 380채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정동영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우리나라 다주택자 상위 10명이 보유한 주택수는 3756채로 집계됐다. 또 공시가격 기준으로는 6160억원으로 1인당 600억원어치의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의 전방위 공세속에 고민하던 다주택자들은 세금을 내더라도 가족에게 물려주는 증여를 택한 경우가 늘었다. 지난 9월까지 서울 아파트 증여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서울 아파트 1만1676가구가 증여됐다. 지난해 같은기간 4848가구보다 140.8%(6828가구)가 늘었다.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다.
매해 1~9월 서울 아파트 증여는 2006년 3004가구, 2009년 4274가구, 2012년 2554가구, 2015년 3289가구 등 10년(2006~2015년) 평균 3223.9가구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6년과 2017년 각각 4751가구, 4848가구로 크게 늘기 시작했다.
특히 다주택자들의 결정은 보유세 개편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빚을 내 집을 산 이른바 ‘갭 투자형’ 다주택자들이 보유세 개편을 기점으로 매물을 한꺼번에 쏟아낼 가능성이 커서다. 다만 이자 부담이 없는 ‘자산가형’ 다주택자들은 보유세 개편을 해도 당분간 버티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종부세 개편안과 부동산 추가 공급대책, 금리인상 등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차질없이 추진되면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부동산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내다봤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종부세 개편안이 통과되고 부동산 추가 공급대책이 꼼꼼하게 추진된다면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부동산이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공급물량이 늘어나고, 정부의 규제가 계속되면 다주택자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센터장은 "현재 금리 인상 가능성도 있고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도 축소되는 상황"이라며 "관건은 부동산 추가 공급 방안을 얼마나 잘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sky032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