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가 투기 조장했나"...진단 처방 논리 없어
섣부른 정책으로 기업들 혼선만 초래
자율규제 통한 문제해결 유도해야
지난달 27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암호화 거래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기업에서 제외시키는 것을 골자로 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중기부 측은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은 지난해부터 투기과열과 유사수신·자금세탁 등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 정부 차원에서 육성·지원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업종 자체를 규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활동에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기부를 비롯한 정부 측은 이번 조치로 인한 파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블록체인 산업 관련 9개 업종에 대해서는 현행처럼 벤처인증을 허가했고, 3년 내 해당 규제를 재검토하는 조항을 추가했다는 근거에서다. 다만 투기과열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부분을 감안해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업계에서는 정부의 섣부른 정책이 일선 현장에서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부처 간 모순되는 정책의 방향성이 일관성을 떨어뜨려 기업들로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규제 해소라는 추세에 역행할뿐 아니라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중기부는 최근 부동산임대업, 미용업, 골프장 등까지도 벤처기업 인증 대상에 포함하며 민간 주도의 벤처생태계 조성을 격려했다. 하지만 정작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거론되는 블록체인 산업에는 강력한 제동을 걸어 성장을 막았다는 것이다.
구태연 테크인로 변호사는 "이번 조치의 성급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상화폐거래소가 투기를 일으키거나 사행행위를 조장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며 "명확하게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 투기가 일어난다고 부동산에 규제를 만드나. 디지털토큰(가상화폐)은 그 자체로 불법물이 아닐뿐더러, 이런 경우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구 변호사는 이어 "드루킹이 잘못했다고 네이버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우는 논리랑 똑같다. 유통을 중개하는 업소가 외부 요인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 아니냐"며 "일종의 사회적 책임을 지운 것이다. 한 업종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부의 선언이자 낙인을 찍는 행위를 이렇게 부실한 근거로 할 수 있나"라고 질타했다.
벤처기업에서 제외되면 정부 차원의 지원·육성 정책을 활용할 수 없다. 세제혜택을 비롯한 정책적 우대에서도 제외된다. 하지만 업계는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조치의 '상징성'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벤처인증 대상에서 제외된 업종은 ▲유흥주점업 ▲무도 유흥주점업 ▲기타 주점업 ▲기타 사행시설 관리 및 운영업 ▲무도장 운영업 등 5개다. 모두 유흥 및 사행성의 성격이 짙다. 업계는 블록체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사행 업종의 연장선상에 놓여, 최악의 경우 '사회악'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생기업들의 해외 진출에도 제약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불가피하게 산업에서 정부 역할이 굉장히 큰 데, 해외에서 투자를 유치할 경우 국내 기업들에게 도메스틱마켓(국내시장)을 창출해 보라고 요구한다"며 "이런 경우 해외에서는 '한국 정부가 육성하지 않는 업종'이라는 인식이 단순한 이미지뿐 아니라 신생 기업들에는 치명적인 개연성을 갖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실례로 지방중기청에서 발급하는 중문·영문 벤처확인서를 투자유치 때 붙여놓으면 신뢰도가 올라가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성과 문제해결책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트코인 열풍' 등 투기 과열에 가려진 이면에는 안전한 자산관리를 가능하게 할 미래 기술이 있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토큰 이코노미(가상화폐 경제)를 위한 플랫폼이 가상화폐 거래소이고, 이는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의 국내 지배를 막아줄 방패"라며 "이번 같은 조치로 국내 산업의 성장이 지체되면, 10년 후 거래를 위한 모든 수수료를 구글같은 해외기업에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지적한 문제에 대해 업계에서도 '자정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며 "성급한 규제보다는 자율규제를 통한 문제해결을 유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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